“가장 안전한 선거”라던 미 국토안보부, 선거 전 ‘전자투표기 해킹 취약’ 경고 받았다

이은주
2020년 12월 1일 오후 12:25 업데이트: 2021년 01월 14일 오후 2:28

보안 전문가들과 접촉하고 500GB 데이터 받아가기도
내부 회의도 여러 차례…사전 경고 받고도 조치 안 해

올해 미국 대선을 “역사상 가장 안전한 선거”로 규정했던 미 국토안보부가 “전자개표기가 해킹에 취약하다”는 사이버 보안 전문가들의 경고를 대선 전에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신반의하던 공화당 의원들도 최근 부정선거 사실을 담은 결의안을 제출한 가운데, 국토안보부가 사전에 경고를 받고도 대응하지 못한 데 따른 책임론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사이버 보안 전문가 겸 퇴역 육군 대령인 필 월드론은 지난 30일(현지 시각) 애리조나주 공화당 상원에서 열린 ‘부정선거’ 청문회에서 “국토안보부는 전문가들로부터 투표 기계가 해커와 조작에 취약하다는 경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월드론은 그의 팀이 전자개표기 취약성과 관련한 정보를 국토안보부와 국토안보부 산하 사이버·인프라안보국(CISA)에 제공했다고 말했다.

월드론에 따르면, 그의 정보 제공은 단순한 제보 차원이 아니었다.

국토안보부 직원들은 월드론 팀과 몇 차례 접촉을 가졌고, 월드론과 일하는 또 다른 팀이 보유한 600기가바이트(GB) 용량의 정보를 얻기 위해 텍사스주 댈러스까지 직접 찾아왔다고 했다.

월드론의 팀 역시 지난 8월부터 연구한 투표 시스템 조작에 관한 정보 200GB 분량을 국토안보부에 제공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국토안보부는 이 데이터에 대해 즉각 분석에 들어갔고 분석을 마친 후 검증을 통해 전자개표기의 보안에 취약점이 있다고 판단했으며, 이와 관련해 여러 차례 내부 회의를 진행했다.

이처럼 월드론 팀의 정보를 입수하고 보안 취약성을 인지했음에도 조치에 나서지 않은 국토안보부에 대해 ‘선거 사기에 연루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청문회에서 월드론은 애리조나주에서 사용한 전자투표시스템 업체 ‘도미니언 보팅시스템’의 개표기가 선거 기간 동안 인터넷에 연결됐다며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앞서 지난달 25일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열린 주의회 공화당 상원 청문회에도 증인으로 참석해 “미국에서 사용되는 전자개표기는 선거 조작이 가능하도록 제작됐다”며 펜실베이니아주에서만 최대 120만 표가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증언했다.

‘국토안보부가 알고도 사전 대비를 하지 않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월드론은 “고위 지도자급에서 헌신이 부족하든지 무능하든지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제공한 자료와 관련해 국토안보부의 내부 회의나 브리핑에 절대 참석하지 못할 것이라고 CISA 소속 직원들에게서 들었다고도 덧붙였다.

월드론의 주장에 관한 논평 요청에 CISA는 답하지 않았다.

앞서 지난달 선거일 직후 부정선거 논란이 도마 위에 오르자 CISA는 12일 반박 성명을 내고 “투표가 분실 또는 삭제되거나 표를 중간에 바꿔 챘다는 증거가 없다”며 “11월 3일 치러진 선거는 미 역사상 가장 안전했다”고 밝혔다.

이 성명에는 정부 위원회인 ‘선거인프라정부조정위’(GCC)와 민간단체로 구성된 ‘선거인프라부문조정위’(SCC)가 참여했다.

그런데 선거장비·프로그램 업체 집합체 성격인 SCC에는 이번에 부정선거 논란의 중심이 된 도미니언이 운영위원으로 등록돼 있다. 그러나 CISA는 성명에서 이와 같은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이 성명이 나오고 닷새 뒤인 17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크리스 크랩스 CISA 국장을 해고했다. “대규모의 부정행위와 사기가 있었다는 점에서 성명은 매우 부정확하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크렙스 CISA 국장은 CBS에 출연해 “기계의 개표 측면에서 투표 조작이 없었다는 것”이라며 이번 선거에서 부정행위가 없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연방수사국(FBI)과 국가안전보장국 등 기관 관계자들이 모여 선거 과정을 감시하는 지휘본부가 있었다면서 “11월 3일을 전후로 선거 시스템에 대한 해킹의 조짐이나 증거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CBS가 백악관에는 논평을 요청하지 않았다며 “일방적인 이야기”라고 받아쳤다. 그는 “올해 대선은 아마도 우리의 가장 안전하지 않은 선거였을 것이다”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