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나토 사이버방위센터 가입…“사이버 보안 능력 32배 의미”

전옥현 전 국정원 1차장

이윤정
2022년 05월 7일 오후 1:13 업데이트: 2022년 05월 7일 오후 1:21

아시아 국가 최초로 정회원 가입
전옥현 전 국정원 1차장 “신흥안보 위협 증대…국제 협력 중요”
“유럽 등 선진국과 공조 확대…사이버 대응능력 고도화 기대”
中 관영 매체 “中·러·北과 더 많은 대결 촉발할 것”

사이버 공격이 지속해서 증가하며 개인·기업뿐 아니라 국가 안보까지 위협하는 가운데 한국이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사이버방위센터(CCDCOE)에 정회원으로 가입했다.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사이버 역량을 인정받은 쾌거로 평가되면서 우수한 사이버 위기 대응 능력을 갖춘 서방 국가들과의 공조가 한층 원활해질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5월 5일 이 같은 소식을 전하며 국정원 사이버안보 책임자가 이날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시에 있는 사이버방위센터 본부에서 열린 가입 연설, 국기 게양식 등 공식 행사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2008년 설립된 나토 사이버방위센터는 세계 최고 권위의 사이버안보 기구다. 벨기에에 위치한 나토 본부가 아닌, 에스토니아에서 별도의 조직을 갖추고 운영되는 기구다. 2007년 러시아의 해킹으로 에스토니아 국가 시스템이 마비된 것을 계기로 나토 회원국들이 공동 대응에 나서면서 탄생했다.

국정원은 지난 2019년, 글로벌 사이버 위협 대응 전략과 노하우를 습득하기 위해 이 기구에 가입 의향서를 제출했다. 이후 2020년부터 센터가 주관하는 ‘락드쉴즈(Locked Shields)’ 대회에 2년 연속 참가하는 등 가입에 공을 들인 지 2년여 만에 가입이 완료됐다. ‘락드쉴즈’는 나토 사이버방위센터가 회원국 간 사이버 위기 대응 협력체계 강화를 위해 2012년부터 매년 개최하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다국적 사이버 방어 훈련이다.

지난해 개최된 ‘락드쉴즈 2021’ 대회 | 국가정보원

국정원은 이번 정회원 가입으로 사이버안보 국제 네트워크가 강화되고 국제 사이버 정책 논의 과정에서 발언권이 커질 것으로 전망하면서 “향후 나토가 주관하는 합동 훈련·정책연구 기회 확대 등을 통해 사이버 대응 역량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옥현 전 국정원 1차장은 5월 6일 에포크타임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최근 사이버 위협 등 신흥안보 위협이 증대하는 상황에서 국제정보기관의 다자간 긴밀한 공조가 중요해지고 있다”며 “한국은 나토 CCDCOE 가입으로 협력할 수 있는 파트너가 늘어났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북한의 사이버 전력이 심각하고 현실적인 위협이 되고 있는 데다 중국발 사이버 공격도 전체 사이버 공격의 1/3을 차지한다”며 “이번 CCDCOE 가입은 우리의 사이버공격 대응 역량을 32배로 늘릴 수 있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최근 사이버 위협은 개인·기업·기관을 넘어 그 대상 범위와 피해가 갈수록 광범위해지면서 국가 안보마저 위협하고 있다. 북한, 중국의 사이버 공격도 지속해서 증가하면서 개별 국가 차원의 역량만으로는 대응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의 가입으로 나토 CCDCOE 정회원은 총 32개국이 됐다. 나토 회원국으로 이뤄진 ‘후원국’은 벨기에, 캐나다, 덴마크, 프랑스,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포르투갈, 영국, 미국, 그리스, 터키, 독일, 스페인, 체코, 헝가리, 폴란드, 불가리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등 27개국이다. 이번에 정회원에 신규 가입한 국가는 한국, 캐나다, 룩셈부르크 3개국이며 이 가운데 나토 비회원국은 한국이 유일하다.

비(非)나토국이 소속된 ‘기여국’은 5개국으로, 기여국 가운데 한국을 제외하고 핀란드·오스트리아·스위스·스웨덴이 모두 유럽 국가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각국 정보기관과 군이 실무기관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앞으로 한국은 국정원이 대표로 훈련과 연구에 참여하게 된다.

나토 사이버방위센터 정회원 가입국 | 국가정보원

한편, 중국 공산당 관영 영자 신문 글로벌타임스는 5월 6일, 논평을 통해 한국의 나토 CCDCOE 가입 소식을 전하며 “미국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와 인도·태평양 지역까지 간섭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중국 헤이룽장성 사회과학원 동북아연구소 다즈강 소장은 “한국의 나토 사이버방위센터 가입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다른 정보 동맹체에 합류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미국이 한국 등 4개국을 ‘파이브 아이즈(미국·영국·호주·캐나다·뉴질랜드 등 5개국 기밀정보 공유 동맹)’에 포함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하원은 지난해 9월 2022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을 처리하면서 ‘파이브 아이즈’를 한국, 일본, 인도, 독일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소개한 바 있다.

글로벌 타임스는 “한국이 미국 동맹체에 가입하거나 그런 움직임을 보일 경우 중국, 러시아, 북한과 더 많은 대결을 촉발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군사전문가 쑹중핑은 “한국이 나토와 협력을 심화하거나 혹은 나토에 가입한다면 안보를 더 불안정한 상태로 만들 뿐”이라며 “한국의 안보는 나토의 정치적, 군사적 심복이 되기보다는 주변국들과 상호 신뢰를 쌓을 때만 보장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후시진 전 환구시보 총편집인은 지난 5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해당 기사 링크를 올리며 “만약 한국이 이웃 국가들에 적대적으로 돌아서는 길을 택한다면 그 길의 끝은 우크라이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후시진은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글로벌타임스 총편집인으로 활동하면서 반미 정서를 자극하는 애국주의 성향의 글로 막말 논란에 휩싸였던 인물이다.

전옥현 전 국정원 1차장 | 연합뉴스

전옥현 전 차장은 중국 관영 매체의 이러한 반응을 두고 “미중 패권 경쟁이 심각한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의 대외정책의 큰 틀이 문재인 정부와 정반대로 가고 있어 중국이 견제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이번 한국의 나토 CCDCOE 가입은 글로벌 차원에서 미국과 협력관계가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중국과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인데 이는 동맹보다 몇 단계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도·태평양을 넘어 나토까지 영역이 확대되는 건 중국의 사이버 능력을 약화할 소지가 있다”며 “이번 나토 CCDCOE 가입으로 한국이 유럽까지 기반을 넓히며 한미관계를 강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중국은 자기들이 손에 넣었다고 생각한 한국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불쾌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정부 차원에서 나설 수는 없으니 매체를 앞세워 한미관계가 군사·경제를 넘어 사이버 분야까지 확대되는 것에 견제구를 던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