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유명학교 중국서 국제학교 77곳 운영…“공산당 세뇌 교육 주입”

정향매
2023년 05월 26일 오전 8:25 업데이트: 2023년 05월 26일 오전 8:27

리시 수낙(Rishi Sunak) 영국 총리가 “중국은 세계 질서에 대한 가장 큰 도전”이라고 밝혔다. 그 가운데 영국 퍼블릭 스쿨(영국 명문 사립학교)들이 중국에서 비싼 학비를 벌어들이면서 학생들에게 공산당 세뇌 교육을 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됐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5월 23일(이하 현지 시간) “최근 영국의 다수 퍼블릭 스쿨이 중국에 국제학교를 설립했다. 학교의 명성을 내걸고 학생들에게 중국 공산당식 세뇌 교육을 주입한다”고 폭로했다. 

RFA는 영국 ‘데일리메일’을 인용해 “영국 ‘세드버그 스쿨(Sedbergh School)’은 중국 푸저우(福州)시와 함께 ‘세드버그학교’를 설립했다. 이 학교 학비는 1년에 23000파운드(약 3768만원)에 달한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의 이념을 그대로 교육 커리큘럼에 적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RFA에 의하면 인터넷에는 세드버그학교 초등학생이 중국 공산당 건국일(10월 1일)에 공산당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영상, 위장 군복을 입은 어린이집 아이가 “나는 어린이 군인. 어른이 되면 조국을 지키겠다”며 이른바 ‘애국’ 시를 낭송하는 영상이 다수 게시됐다. 

영국 크랜레이 스쿨(Cranleley School)이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에 설치한 ‘우한 크랜레이 고등학교(Wuhan Cranleigh)’가 게시한 영상에는 10대 청소년 10여 명이 군복을 입은 호위대로 ‘변신’한 후 소총과 오성홍기를 들고 행진하는 장면이 담겼다. 

영국 크랜레이 스쿨(Cranleley School)이 중국에 설치한 국제학교 학생들이 인민해방군 군복을 입고 ‘애국’ 영상을 제작했다. | 중국 인터넷 화면 캡처 편집

국제학교 관련 데이터를 제공하는 업체 ISC의 통계에 의하면 중국에 진출한 영국 퍼블릭 스쿨은 77개에 달한다.

윈스턴 처칠 총리의 모교로도 유명한 해로 스쿨(Harrow School)은 2020년 9월부터 지금까지 중국에서 이중언어(중국어·영어) 국제학교 4곳을 설립했다. 운영 수익은 총 381만 파운드(약 62억 5000만원)에 달한다. 2018년부터 중국 내 분교 3개를 세운 킹스 칼리지 스쿨 웜블던(King’s College School Wimbledon)은 지금까지 벌어들인 수익으로 약 546만 파운드(약 89억 5000만원)을 기록했다.

중국 당국은 이들 명문 학교가 역사, 지리, ‘사상과 도덕’ 과목을 가르칠 때 정부가 허락한 이른바 ‘표준 교과서’만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중국 역사 교과서에는 학생들이 대만·홍콩에 대해 중국 당국의 주장대로 인식하도록 가르치고, ‘조국의 통일 대업’을 언급한다. 지리 교과서에는 “대만은 중국의 성(省)들 가운데 하나이며 조국의 신성한 영토이다”라고 쓰여있다. 

중국 초·중등학교는 ‘사상과 도덕’을  필수 교과목으로 가르친다. 해당 과목에 중국 당국은 “중국 공산당이 인간 존중을 근본으로 삼고 인민을 위해 정치를 한다(以人為本, 執政為民)”고 가르친다. 또한 “중국 공산당과 티베트, 신장 위구르 등 소수민족은 평등하고 단결하며 공동 번영하는 관계이다”라고 설명한다. 

지난해 중국 교육부는 중국에 진출한 영국 학교에 ‘시진핑 사상(習近平思想)’이 추가된 새 버전 교과서로 가르칠 것을 요구했다. 청년들이 마르크스주의 신념을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중국의 ‘중외 합작학교 운영조례’에 의하면 중국 내에서 국제학교를 운영하는 외국 교육 기관은 반드시 중국 당국의 교육 방침에 따라야 한다. 교과목을 개설하거나 외국 교과서를 사용하기 전에 당국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중국 내 영국 국제학교의 한 전직 교사 A 씨는 데일리메일에 “(영국) 학교 측은 ‘시진핑 사상’을 가르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 교육 법령을 지키기 위해서 교사는 영국 학교 커리큘럼에 따라 가르치기 매우 어렵다. 외국에서 출판된 서적은 전면적으로 사용이 금지됐다.  교사들은 말 실수를 할까 봐 걱정한다”고 말했다. 

A씨는 중국을 떠난 이유에 대해서 “시진핑의 권력이 너무 크기 때문에 중국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매우 불편했다”고 말했다. 

런던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홍콩 워치(Hong Kong Watch, 香港監察)’의 베네딕트 로저스(Benedict Rogers) 회장은 매체에 “영국 퍼블릭 스쿨들이 설립한 국제학교들은 중국 공산당이 학생들에게 정치 사상을 주입하는 도구가 됐다”고 지적했다. “학교들이 이렇게 하는 유일한 이유는 막대한 수익”이라며 “중국 학생들에게 자유, 민주, 인권 등 보편적 가치관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국제학교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로저스는 저명 인권 운동가로서 보수당 인권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중국계 영국 작가 마젠(馬建)은 “중국에 거주하는 영국인 중 자녀를 이런 국제학교에 보내는 사람이 많다”며 “세뇌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중국 당국의 ‘해외 대리인’이 될까 봐 우려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