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FBI·英MI5 첫 공동성명, 초점은 중국 아닌 中 공산당

한동훈
2022년 07월 8일 오후 9:17 업데이트: 2022년 07월 8일 오후 10:33

지난 6일(이하 현지시간), 미국과 영국의 정보기관 수장들이 이례적으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과 영국 국내정보국(MI5) 국장은 중국의 산업스파이 활동이 “막대한 위협”이라고 경고했다. 양국 정보기관 수장이 공동회담을 진행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과 켄 맥컬럼 MI5 국장의 발언을 꼼꼼히 살펴봤다.

영국 MI5 국장 “중국 공산당은 가장 큰 도전”

맥컬럼 MI5 국장은 “게임의 판도를 바꿀 도전들은 대부분 중국 공산당에서 나온다”며 “중국 공산당은 전 세계적으로 더 은밀하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나 ‘중국 정권’ 대신 명확하게 ‘중국 공산당(Chinese Communist Party)’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맥컬럼 국장은 “이런 말이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으나, 위협은 실제로 존재한다”며 “우리는 중국 공산당의 위협에 대해 논의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 공산당의 도전을 “(영국과 미국이) 협력해 대처해야 할 대규모 도전”이라며 공산당 정권이 조직적으로 서방 세력을 약화시키고 첨단 기술을 빼돌리기 위해 중국 정부기관을 움직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MI5 Director General Ken McCallum
영국 국내정보국(MI5) 켄 맥컬럼 국장. 2021.7.14 | Yui Mok/PA

맥컬럼 국장은 또 “중국 공산당은 기업과 개인이 당의 영도에 강제적으로 따르게 하는 접근법을 사용하고 있다”며 경고했다.

이는 중국의 개인이나 기업을 단순한 민간으로 봐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중국 기업들은 자유세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며 중국 정부와 무관하다는 점을 주장한다. 하지만 중국의 시스템은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맥컬럼 국장은 공산주의 중국의 도전을 극복할 방법으로 ‘자유세계의 시스템과 서로 간의 신뢰’를 강조했다.

그는 “자유세계에서 우리는 국가 시스템 내부와 국제 관계에서 서로 신뢰를 구축해가면서 중국 공산당보다 더 잘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FBI 국장 “중국, 자유세계 약화 추진”

레이 FBI 국장은 중국을 “미국과 동맹국, 파트너 국가들을 약화시키고 있는, 국제질서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경제와 국가 안보에 장기적으로 가장 큰 위협을 가하는 것이 중국 정부라는 점을 일관되게 관측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러시아 위협론이 대두되는 상황에서도, 공산주의 중국이 여전히 가장 큰 안보 위협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레이 국장은 “여기서 내가 말한 ‘우리’는 미국과 영국은 물론 유럽 및 다른 지역 동맹국도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중국의 산업 스파이 활동에 주목했다. 중국 산업 스파이들이 항공 산업에서 농업에 이르기까지 경제 전 분야를 노리고 있다고 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주장을 인용해 중국 정부 지원을 받은 해커들이 지난해 10만여 대의 서버를 해킹하는 등 미국 인프라 시설을 해킹 공격했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미국과 영국에서 기술을 훔치고 빼앗으려 하는 중국의 시도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 경영진은 FBI나 MI5와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크리스토퍼 레이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 | OLIVIER DOULIERY/POOL/AFP via Getty Images=연합뉴스

레이 국장은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도 언급했다.

그는 중국이 서방과의 경제적 단절에 대비하고 있으며, 이는 대만 침공을 준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서(clue)”라고 말했다.

또한 “우리가 관측한 바에 따르면, 중국은 앞으로 당할지도 모를 제재로부터 경제를 보호할 방법을 찾고 있으며, 국제사회의 분노를 일으킬 행위를 하고서도 피해를 입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고 했다.

중국이 내정 간섭을 시도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레이 국장은 “중국 정부는 우리와 동맹국들의 정치에 간섭함으로써 세계를 (자기네 방식으로) 만들어 가려고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중국계 미국인들, 특히 정계에 진출했거나 진출이 유력한 인사들을 상대로 공작을 벌여 미국의 선거에 영향을 주려 했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가 1989년 천안문 시위 참여자이자 중국 정부에 비판적인 인물인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뉴욕주 의회 선거에 직접 개입하기까지 했다”는 사실도 전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동맹국에 향해 “중국의 위협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미 FBI와 국가방첩안보센터(NCSC)가 제작한 26분짜리 영상물 ‘네버나이트 커넥션'(The Nevernight Connection)의 한 장면. 중국의 스파이 공작을 경고하는 내용이 담겼다. | 유튜브 캡처

“대응 상대는 중국·중국인 아닌 중국 공산당”

영 MI5 맥컬럼 국장은 “이번 공동성명의 목적은 중국인을 악마화하거나 중국 기업을 세계와 단절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이 가하는 수많은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그는 공산당의 위협에는 은밀한 기술 유출, 강압적인 기술 탈취, 연구개발력 착취, 그리고 사실상 사회 전 분야를 대상으로 한 사이버 공격이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 공산당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우리의 경제·사회·입장을 구부러트리려 하고, 기준과 규범을 (자기네들이) 결정해 국제 질서를 지배하려 한다”며 “우리가 이를 알아채고 대응해야 할 이유다”라고 말했다.

영국 정부는 전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중국 공산당의 스파이 활동이 활발한 표적이 되어 왔다.

올해 초 MI5는 중국 스파이가 모금 운동 등의 활동으로 위장해 의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침투했다고 경고했고, 영국 정부 역시 언론인으로 위장한 몇몇 중국 스파이들을 추방했다.

맥컬럼 국장은 이런 중국 스파이 사건은 개혁·개방 이후 중국으로 유입된 서방의 경제적 자유주의가 중국에 더 큰 자유와 투명성을 가져다주지 못했다는 냉혹한 진실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서방에 널리 퍼진 가설, 즉 중국이 번영하고 서방과의 접점이 늘어나면, 중국의 정치적 자유가 저절로 증대될 것이라는 견해는 틀렸다는 게 명백하게 드러났다”고 했다.

덧붙여 “중국 공산당은 서방의 민주주의, 언론, 법률 시스템에 관심이 있다”며 “그러나 슬프게도 그것을 배우려는 것이 아니라 악용해서 이익을 취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경고했다.

미 FBI 레이 국장 역시 이번 공동성명이 중국에 대한 혐오나 인종차별을 조장하려는 취지가 아니며, 서방에 대한 위협은 ‘중국’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대응 타깃으로 삼는, (우리에게) 위협을 가하는 자는 중국 정부와 중국 공산당이지 중국 정부가 가하는 불법적인 탄압의 빈번한 희생자인 중국계 이민자들이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