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환경청, 유전자 변형 모기 수백만 마리 방출 승인

하석원
2022년 03월 10일 오전 11:07 업데이트: 2022년 03월 26일 오전 11:52

英 생명공학회사 옥시텍 제안, 美 당국 승인
백신 전도사 ‘빌 앤 멀린다 게이츠’ 재단 후원

유전자 변형 모기 수백만 마리를 방출하는 실험이 미국에서 허용됐다. 사상 최대 규모다. 모기 개체수 감소를 위해서라는 설명이 제시됐지만, 환경과 공중보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는 우려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영국 스타트업 생명공학회사 옥시텍(Oxitec)에 유전자 변형 모기 수백만 마리를 방출하는 실험을 시범적으로 허용했다고 밝혔다. 방출 장소는 최근 수년간 모기 떼가 극성을 피우고 있는 플로리다와 캘리포니아의 특정 지역들이다.

이 모기들은 치명적인 ‘자기 제한’ 유전자를 물려 주도록 유전자가 변형됐으며 전부 수컷이다. 여느 수컷 모기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물지 않는다. 야생에 방출돼 야생 암컷 모기와 짝짓기하면 그 자손 모기들은 성충이 되기 전에 죽어 모기 개체수 감소로 이어진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옥시텍에 따르면, 유전자 변형은 ‘지속가능하고 표적화된 생물학적 해충방제 기술’이다. 살충제는 벌이나 나비 같은 유익한 곤충들까지 피해를 입히지만, 유전자 변형은 특정 해충만 ‘표적화’해 제거할 수 있다. 뎅기열, 지카 바이러스 등을 옮기는 ‘이집트숲모기’가 표적이다.

이번 사업은 ‘빌 앤 멀린다 게이츠 재단’에서 후원한다. 빌 게이츠와 아내 멜린다(현재 이혼)이 공동 설립한 이 재단은 뎅기열, 황열병, 지카 바이러스 등, 곤충을 매개체로 하는 질병 퇴치사업의 일환으로 옥시텍을 후원하고 있다. 백신 보급에 앞장선 재단이기도 하다.

옥시텍은 지난 2013~2015년 브라질과 케이먼제도에서 유전자 변형 모기를 시험 방출한 결과, 90%의 개체수 감소 효과가 입증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플로리다와 캘리포니아에서도 3개월에 걸쳐 14만4천 마리를 방출해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과학자, 공중보건 전문가, 환경단체를 포함한 비판론자들은 유전자 변형 모기 방출이 환경과 공중보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어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 환경단체 ‘프렌즈 오브 디 어스’ 관계자는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일단 모기를 방출하고 나면 그것을 되돌릴 수 없다”며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과학적 증거 역시 아직 충분치 않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회사 측 주장과 달리 일부 모기가 살아남아 변형된 유전자를 퍼뜨린다는 연구도 있다.

2019년 과학 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린 예일대 생태·진화생물학 제프리 파월 교수 등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3~2015년 브라질에서 진행된 옥시텍의 유전자 변형 모기 방출 시험 2년 뒤 현지 모기 10~60%에서 변형된 유전자가 검출됐다(논문 링크).

다만, 이 연구 결과는 동료 학자들의 검증이 완료되지 않았고, ‘사이언티픽 리포트’ 편집부에서도 2020년 “일부 내용에 대해 명확하게 나타내지 않았다”며 우려 사항을 추가했다. 저자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모기가 옮기는 치명적 질병을 방제하겠다는 회사 측의 취지와 달리 방출 대상지인 캘리포니아에 뎅기열 등 모기 매체 질병이 발생한 적이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식품안전을 위한 비영리 민간재단인 ‘식품안전센터’의 제이디 핸슨 정책연구실장은 “이 실험은 캘리포니아에서 불필요하고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하다”며 “지금까지 캘리포니아에서 모기에 물려 뎅기열, 황열병, 지카나 치쿤쿠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례는 없었다”고 말했다.

옥시텍은 앞으로 10억 마리 이상의 유전자 변형 모기를 방출할 계획이다. 전부 수컷이지만, 번식이 계속되면 변형된 유전자를 지닌 암컷이 출현해 더 심각한 독성과 공격성을 지닌 ‘변종’ 모기가 탄생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핸슨 실장은 “캘리포니아, 플로리다에서 이집트숲모기가 문제라면 울바치아(Wolbachia)에 감염된 모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동원하면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울바치아 박테리아는 모기와 파리 등의 몸에서 공생한다. 모기에는 별다는 해를 끼치지 않지만, 모기가 질병을 옮기는 능력을 약화시키는 특징을 지녔다. 미국 미시간대 연구팀은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울바치아를 이용해 말라리아 감염을 막는 논문을 싣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