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중동미디어연구소, 중국 ‘스파이 풍선’ 실체 폭로

정향매
2023년 05월 21일 오후 10:22 업데이트: 2023년 05월 21일 오후 10:22

“중국의 공식 발표 자료들이 ‘미국 상공에 나타난 고고도(高高度) 무인 정찰 기구는 기상 관측용 풍선’이라는 중국 당국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둔 싱크탱크 중동미디어연구소(MEMRI)가 운영하는 ‘중국 미디어 연구 프로젝트(CMSP)’ 팀은 올해 3월, 2014년부터 2023년 2월 사이 중국 관영 매체와 영상 플랫폼에 공개된 자료를 번역·분석한 보고서에서 이같이 폭로했다(보고서). 

2023년 2월 2일(이하 현지 시간), 미국 몬태나주 상공에서 중국의 고고도 무인정찰기구, 이른바 ‘스파이 풍선’이 발견됐다. 중국 당국은 “해당 기구는 우연히 항로를 이탈한 기상 관측용 민간 무인 비행선”이라고 주장했지만, 미군은 2월 4일 해당 풍선을 격추했다. 

중국 외교부는 해당 풍선은 ‘민용 풍선’이라고 재차 강조하며 미국이 풍선을 격추한 것에 항의했다. 하지만 CMSP가 중국 인민해방군 전문가들이 공개한 논문, 기고문, 영상 등을 조사한 결과, 중국은 2014년부터 최근까지 군용 비행선, 비행선 탑재 초고음속 비행체, 근접 우주 비행체(20~100km 공중에서 비행하는 비행체), 무인 정찰 풍선 등을 연구·개발해 온 사실이 밝혀졌다. 

중국 군사 네트워크(中國軍網)에 소개된 20~100km 공중에서 비행하는 ‘근접 우주 비행체’ 비행 풍선(좌), 비행선(중간), 비행기(우) 모형. | 사진=중동미디어연구소(MEMRI) 캡처

CMSP 보고서에 의하면 미군이 중국 풍선을 격추한 다음 날인 2월 5일, 왕샹수이(王湘穗) 베이징 항공항천대 교수는 중국 관영 ‘문화종횡(文化縱橫)’ 잡지에 “비행선은 격추됐지만, 필자가 9년 전에 제시한 군사 전략 구상은 실현됐다”는 내용의 기고문을 발표했다. 중국 인민해방군 대교(大校·상급대령) 출신인 왕샹수이는 중국의 무제한 전쟁을 다룬 ‘초한전(超限戰)’의 공동저자이다. 

왕샹수이 교수는 2014년 5월 12일, 중국 학술지 ‘국제안전연구(國際安全研究)’에 ‘초장 내구성과 신속 대응이 가능한 혁신적인 방공 시스템’이라는 제하의 논문을 발표했다(논문). 왕 교수는 논문에서 “장시간 공중에 머물 수 있는 비행선은 새로운 방공 시스템의 핵심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같은 해 11월 21일, 중국 관영 ‘중국청년보(中國青年報)’ 제10면에는 ‘비행선은 큰 군사적 잠재력이 있다’는 제하의 기고문이 실렸다. 저자는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 공정학원 소속 전문가 왕펑(王鵬). 그는 기고문에서 “비행선은 안전하고 비용 효율성이 높은 비행기로서 방공, 국경·전장 감시, 통신 임무 수행 등에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비행선이 군사 작전에서의 여러 장점과 더불어 미국, 이스라엘, 한국의 비행선 사용 관련 정보도 소개했다. 

2014년 11월 21일자 중국 관영 ‘중국청년보(中國青年報)’ 제10면(좌); 2023년 미군이 격추한 중국 ‘스파이 풍선’(우) | 사진=중동미디어연구소(MEMRI) 캡처

CMSP 보고서는 비행 풍선을 소개하는 중국 군 관계자들의 다른 논문도 소개했다. 

2022년 4월, 중국 학술지 ‘선박전자대항(船舶電子對抗)’에는 ‘군사 대결에서 비행 풍선 사용’이라는 제하의 논문이 실렸다. 후베이 우한 공군조기경보학원 양젠쥔(楊建軍)·왕웨이싱(王衛星), 중국특수항공기연구소 랴오추옌(廖秋燕), 인민해방군 93253부대 장웨이(張偉) 등 현직 장교들이 공저한 논문이다.

저자들은 논문에서 “다양한 군사 작전에서 비행 풍선을 사용해 적군의 경보 시스템을 감시하고 방공 시스템을 교란하는 목적에 달성할 수 있다. 비행 풍선이 집단으로 공중에 나타나면 육군이나 공군 모두 쉽게 이들 풍선을 추격할 수 없다. 비행 풍선에 폭탄을 설치하면 격추 시 땅 위에 있는 사람에게도 위협이 된다”고 주장 했다.  

2022년 4월, 중국 학술지 ‘선박 전자 대항(檢傳電子對抗)’에 실린 ‘군사 대결에서 비행 풍선 사용’이라는 제하의 논문. | 인터넷 사진

중국 인민해방군의 관련 연구는 이론에만 머물지 않았다. 

2022년 12월 22일, 중국 영상 플랫폼 ‘하오칸(好看)’에는 “우리는 오랜 기간 무인 고고도 비행 풍선을 정보수집 도구로 사용해 왔다”는 내용의 영상이 게시됐다. 자신을 운송공학 교수이자 중국 화교대학(華僑大學) 특별연구원으로 소개한 한 익명의 중국 학자는 영상에서 “무인 정찰 비행선은 30km 공중에서 비행할 수 있기 때문에 현대 방공 시스템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런 비행선은 이른바 ‘하늘의 눈(天眼)’으로서 스텔스 항공기 탐지에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고 말했다. 

그에 의하면 중국은 2015년 12월, 첫 근접 우주 비행선 ‘위안멍(圓夢·꿈은 이뤄진다)호’ 비행 실험에 성공했다. AS-700 유인 비행선과 골든 이글(金鷹) 무인 비행선도 개발했다. 그는 “중국의 정찰 비행선은 미국의 남중국해 침입을 감찰하는 데 큰 역할을 발휘하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이 2015년 12월에 비행 성공한 첫 근접 우주 비행선 ‘왠멍(圓夢·꿈은 이뤄진다)호’ CG 이미지 | 사진=바이두 백과

CMSP에 의하면 2017년 10월, 중국은 비행선을 이용하여 살아 있는 거북이를 가까운 우주로 운반하는 데도 성공했다. 2018년 3월 30일, 중국 인민해방군 산하 ‘중국군사망(中國軍事網)’에 실린 ‘근접 우주 비행체는 만능 무기’라는 제하의 보고서는 해당 실험을 소개하면서 “이 실험은 비행체가 기존 군용기의 비행 고도 20km와 우주선의 최고 운항 고도 100km 사이의 근접 우주 고도에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근접 우주 비행체를 통해 방공, 미사일 방어 작전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무기도 설치할 수 있다면 해당 비행체는 전 세계 어디에도 지금보다 훨씬 빠른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무기가 된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근접 우주 비행체는 정보 수집, 반격, 공격 작전에도 활용될 수 있다고 전했다.  

2020년 11월 24일, 중국 관영 신랑군사(新浪軍事) 페이지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중국인민해방군은 2018년 9월, 간쑤(甘肅)성 주취안(酒泉) 위성 발사기지에서 고고도 비행선으로 초고음속 비행체 모델을 발사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이런 방식으로 발사된 무기는 적의 방공망을 뚫을 수 있는 차세대 무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기사는 전했다. 

미국 폭스뉴스는 5월 18일 MEMRI 보고서를 소개하면서 “이는 중국 당국이 간첩 활동과 군사 공격을 진행하기 위해 스파이 풍선을 개발했다는 점을 증명한다”고 보도했다. 

대만 국방부 싱크탱크 국방안전연구원 산하 중공정군및작전개념연구소(中共政軍與作戰概念研究所) 린바이저우(林柏州) 연구위원보(輔)는 2월 8일 국방안전연구원 홈페이지에 게재된 기고문에서 “중국 군사 과학은 ‘군민융합(軍民融合)’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중국 당국은 격추된 풍선이 기상 관측용 민간 기구라고 주장하지만, 해당 풍선이 수집한 기상 정보도 전시에는 매우 중요한 작전 정보로 쓰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린바이저우 연구원보은 “작전에 성공하면 ‘미국의 방공 시스템이 허술하다’고 비웃고 실패하면 ‘민용 기구 비행 실험이다’라는 거짓말로 진실을 은폐하는 게 중국 공산당이 애용하는 프로파간다 방식이다. 결과가 어떠하든 모두 중국 공산당의 인지전(認知戰), 정치전(政治戰), 미디어전(宣傳戰) 소재로 쓰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