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중국 최대 반도체 업체 SMIC 제재 “중공군과 연계 우려”

이은주
2020년 09월 27일 오후 9:59 업데이트: 2020년 09월 28일 오후 2:14

미국 정부가 중국 최대 반도체 제조업체인 SMIC(중신궈지·中芯國際)를 거래제한 기업 명단에 올려 기술과 장비 공급을 차단하기로 했다.

SMIC는 중국 공산당 인민해방군(중공군)과 연계된 것으로 파악됐다.

미 상무부는 지난 25일(현지 시각) 미국 기업들에 서한을 보내 앞으로 SMIC에 특정 기술을 수출하려면 사전 면허를 취득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한은 “SMIC에 대한 수출은 군사적 목적에 사용될 수 있는 ‘받아들일 수 없는 위험’을 가지고 있다”며 제재 사유를 전했다. SMIC와의 거래로 미국 기업의 반도체 기술이 중공군에 의해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조치에 따라 관련 미국 기업들은 SMIC에 반도체 장비와 기술을 수출할 경우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반도체 칩(집적회로)은 컴퓨터와 스마트폰부터 미사일, 전투기에 이르기까지 첨단 기술이 들어간 모든 장비에 사용되고 있다.

SMIC 측은 이번 제재 조치와 관련해 “공식 통보를 받지 못했다”면서 “중공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

이어 “SMIC는 민간 상업용 최종 소비자들에게만 반도체를 제조하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무부는 “미국의 국가안보와 외교정책 이익과 관련한 잠재적 위협을 계속해서 감시하고 평가하고 있다”며 그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는 방침이다.

미국 정부는 최근 국가안보 위험을 이유로 중국 주요 기술기업을 거래제한 명단에 올려 제재를 확대·강화하고 있다.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에 대한 제재도 그중 하나다.

미국은 지난 15일부터 미국의 장비와 기술을 사용해 만든 모든 반도체를 정부 허가 없이 화웨이에 공급하지 못하도록 했다.

미국 정부가 제재 조치에 나서면서까지 우려하는 것은 중공 정부의 ‘민군융합 전략’이다.

방위산업 기반과 민간 기술을 융합시켜 군사 발전과 첨단기술 개발을 추진한다는 전략으로 2017년 설립된 중앙군민융합발전위원회가 총괄하고 있다.

중공은 이 전략을 수립해 중공군과 국영기업 간 연계를 형성했고, 이로 인해 외국기업이 중국 기업과 협력할 경우 기업의 기술이 중공군에 유입될 가능성이 열렸다.

미 국무부는 웹사이트를 통해 “중공이 자체적인 연구·개발 노력이 아닌 군사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세계 첨단 기술을 탈취, 확보하고 우회하는 방식으로 이 전략을 시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 제재에 대해서는 SMIC가 사업상 큰 타격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환구시보(環球時報)의 영자 매체인 글로벌타임스는 27일 업계 분석가의 말을 인용해 SMIC는 화웨이와 달리 수출 규제에 대한 사전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화웨이는 제재가 발효되기 전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의 반도체 칩을 대량 구매하는 등 공급 재고를 확보할 수 있었다.

화웨이가 물품 사재기에 나서면서 대만의 지난해 수출 기록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대만 재무부는 지난 8월 수출이 지난해 동기간 대비 8.3% 증가한 312억달러(37조원)로 집계됐다고 7일 발표했다. 화웨이는 수출 증가에 15억~20억달러의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반도체 생산업체는 화웨이에 반도체 공급을 지속하게 해달라는 특별허가 신청을 미 상무부에 요청한 상태다.

앞서 9월 초 로이터통신은 미 국방부 당국자를 인용해 행정부가 중국 반도체 제조업체를 제재 명단에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 같은 보도가 나오자 홍콩 증권거래소에서 SMIC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23% 하락한 18.24 홍콩달러를 기록했다.

대만 경제지 이코노미 데일리는 27일 익명의 업계 분석가의 말을 인용해 “대만 반도체 칩 공급업체들이 SMIC에 대한 제재로 수혜를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미국이 화웨이에 이어 SMIC까지 제재 조치에 나서면서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에 중국은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반도체 산업을 강화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중공 정부는 오는 2025년까지 반도체 국내생산을 확대해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 3일 중공 정부는 반도체 산업 활성화를 위해 2025년까지 총 1조4천억달러를 추가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방 정부도 반도체 업체들에 정부 보조금과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등 반도체 산업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중국 경제지인 ‘21세기 비즈니스헤럴드’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 1일까지 중국에서 반도체 기업 7021개가 새로 생겼다.

그러나 반도체가 물량 공세만으로는 따라잡기 어려운 기술격차가 존재하는 산업분야이기 때문에, 빈손 투자로 끝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