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의원, 4·25 기념 성명 “中 현대사 최대 규모 평화 시위”

남창희
2022년 04월 24일 오후 5:20 업데이트: 2022년 04월 24일 오후 8:58

미국 하원의원이 ‘4·25 집회’ 23주년을 맞아 기념 성명을 발표했다. 공화당 스콧 페리 하원의원은 21일 성명을 통해 “이 사건은 중국 현대사에서 가장 큰 규모의 평화적 시위였다”며 “중국 정권의 압제가 끝나기를 바라는 수백만 명의 세계인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고 밝혔다.

‘4·25 집회’는 1999년 4월 25일 중국 베이징의 고위층 집단 거주지인 중난하이 주변에 파룬궁(法輪功) 수련자 1만여 명이 모인 사건을 가리킨다. 이들은 이틀 전 중국 톈진 공안국에 체포된 동료 수련자 45명에 대한 석방과 자유로운 수련 환경 보장을 요청하기 위해 모였다.

이들 45명은 톈진사범대에서 발행하는 청소년 잡지에 실린 파룬궁 관련 기사가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당국자들에게 알리려다 체포됐다. 이 과정에서 다수가 구타로 부상을 입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참가자들은 구호를 외치지도 현수막을 펼쳐 보이지도 않았다. 이들은 경찰의 안내에 따라 중난하이 주변 인도에 나란히 서있었고 정부 고위층이 관심을 보일 때까지 묵묵히 기다렸다. 정부 고위층 인사가 요구사항을 접수한 후 참가자들은 자발적으로 해산했다.

조용히 시작해 아무런 소동 없이 고위층 관계자를 만나 대화를 하고 약속을 받은 것으로 마무리된 이 집회는 중국 현대사에 유일무이한 대규모 평화 집회로 기록됐다.

이에 파룬궁 수련자들은 이 사건을 “4·25 평화청원”으로 부르고 23년째 이날을 기념해오고 있다. 매년 이날을 전후로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모임을 열고 기념식을 개최한다.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알리는 행사도 진행한다.

파룬궁은 중국의 심신수련법으로 공식명칭은 파룬따파(法輪大法)이다. 이 수련법이 지향하는 핵심가치는 진실(眞)·선량(善)·인내(忍)이며, 이를 원칙으로 삼아 자신의 생활환경 속에서 건강하고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1999년 4월 25일 중국의 파룬궁 수련자들이 베이징 중난하이 인근 푸유가 대로변 인도에 서있다. | 명혜망

1990년대 초 중국 길림성 장춘 지역에서 처음 일반에 공개됐고, 수련자들의 입소문과 기공 박람회 등을 거쳐 전국적인 인기를 얻으며, 1997년경 수련인구가 당국 추산 7천만~1억 명으로 집계됐다.

“인민의 건강 증진에 기여한다”는 당국의 호평을 받으며 발전하던 파룬궁이 된서리를 맞은 것은 1999년 7월이다. 중국 공산당은 파룬궁을 금지하고 대대적인 탄압에 돌입했다.

페리 의원은 “중국 공산당은 비정치적인 활동이더라도 대규모로 확산되자 곧 정권을 향한 위협으로 봤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 공산당은 100년 전 창당된 이래 피에 굶주리고 살인을 즐기는 마르크스주의 문화를 장려해 수천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데 전념해왔다”고 덧붙였다.

파룬궁 수련자들이 실제로 위협이 되어서가 아니라, 대량 살상을 갈망하는 중국 공산당의 본성이 구실을 찾아 탄압을 일으켰다는 설명이다.

베이징 하이뎬구에 사는 익명의 목격자는 1999년 4월 25일 중난하이에 모여 있던 수련자들을 만나 대화한 고위층 인사가 주룽지 총리라고 증언했다.

이 목격자는 “그날 오전 8시 15분쯤으로 기억한다. 주룽지 총리가 수행원과 함께 국무원 정문에서 나와 길 건너편에 서 있던 청원인(수련자)들을 살펴봤다. 수련자들은 주룽지 총리를 보고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목격자에 따르면, 수련자들에게 다가온 주룽지 총리는 “무슨 일로 여기 모였나? 누가 여러분에게 모이라고 시켰나”라고 물었고 총리 주변에 모여든 수련자 가운데 누군가가 “우리를 조직한 사람은 없다. 파룬궁 관련 문제에 대해 알려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모였다”고 답했다.

주룽지 총리는 “왜 편지를 쓰지 않았나? 청원하고 싶은 게 있으면 편지를 쓰라.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여기에 모였나”라고 물었고, 여러 수련자가 저마다 대답했다. 편지를 여러 번 썼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상황을 파악한 주룽지 총리는 “실무자들을 만나 자세히 설명하라”며 몇 명을 대표로 내세울 것을 요구했고, 몇 사람이 즉석에서 손을 들자 그들 가운데 3명을 지목해 중난하이의 국무원 청사 안으로 들여보냈다.

고위관리나 외빈이 아닌 일반인이 중난하이 내부로 들어간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내부로 들어간 수련자 3명은 실무자들을 만나 상황을 전달했고 “파룬궁을 자유롭게 수련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중난하이를 빠져나왔다. 이들로부터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수련자들은 사건이 잘 해결됐다고 생각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석 달 뒤인 1999년 7월 20일 장쩌민(江澤民) 당시 총서기의 명령으로 파룬궁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 탄압은 중국 역사상 가장 긴 탄압으로 기록되고 있다.

페리 의원은 이 탄압을 “비겁한 불법 행위”라고 규정했다.

파룬궁 수련자들은 1999년 4월 25일 베이징에서 1만여명의 파룬궁 수련자들이 평화롭게 청원한 사건을 기념해 뉴욕 플러싱에서 시가행진하고 있다. 2021.4.18 | 사미라 바우어/에포크타임스

미국에 서버를 둔 파룬따파정보센터에 따르면, 박해가 시작된 이래 수백만 명의 수련자들이 불법으로 구치소, 교도소, 수용시설에 수감돼 고문 등 여러 종류의 박해를 받고 있고 또 중국 공산당의 조직적인 장기 적출 범죄에 희생되고 있다.

일부 국제 인권 문제 전문가들은 중국 공산당의 파룬궁 탄압을 ‘집단학살'(genocide)로 규정했다.

중국 내 파룬궁 탄압을 추적하는 웹사이트 명혜망에 따르면 파룬궁 탄압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명혜망은 지난해 수련생 5886명이 불법 체포되고 1만5527명이 재산 약탈, 위협 등의 시달림을 당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