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민주당 ‘낙태권’ 성문화 법안, 상원서 51대 49로 부결

남창희
2022년 05월 12일 오후 12:48 업데이트: 2022년 05월 12일 오후 12:48

미국에서 낙태죄를 폐지한 50년 전 판례가 잘못됐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가운데, 이 판례를 번복하지 못하도록 성문화하려는 민주당의 시도가 좌절됐다.

11일(현지시각) 민주당이 발의한 <여성건강보호법(WHPA)>이 상원에서 반대 51표, 찬성 49표로 부결됐다. 이 법은 1973년 내려진 ‘로 대 웨이드’ 판례를 연방법으로 성문화하는 것이 골자다.

민주당은 공화당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방해)로 맞설 것에 대비해, 이번 법안을 필리버스터 우회 표결에 붙였다. 이를 위해서는 총 60표가 필요하다. 하지만, 표결은 예상외로 싱겁게 끝났다. 통과에 필요한 60표 문턱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에 그쳤다.

공화당과 민주당(무소속 2석 포함)이 50대 50의 동률을 이루고 있는 상원 구도에서, 민주당 내 온건파인 조 만친 의원은 표결 전 “낙태를 성문화하는 법안에 찬성하지 않겠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지난 2일 미국 매체 <폴리티코>가 입수한 미 연방 대법원 의견서 초안 유출본에 따르면, 다수 대법관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철회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연방 대법원은 의견서 초안은 최종 판결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50년간 낙태 허용의 기반이 된 판례가 뒤집어질 수 있다는 소식은 미국 사회에 큰 파문을 남겼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 초반까지 낙태를 법으로 금지하고 처벌했다. 하지만,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례를 계기로 태아가 자궁 밖에서 스스로 생존 가능하기 전까지는 낙태를 허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당시 기준으로는 약 임신 28주 차였다.

이 기준은 점차 완화됐고 현재 미국에서는 임신 6개월까지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이후 친생명 단체들이 태아의 생명권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목소리를 내왔고, 최근 최소 8개 주에서 특별히 위독한 경우를 제외하고 낙태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하거나 검토하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을 수 없도록 못 박기 하기 위해 작년부터 관련 입법을 본격화했다. 작년 9월 하원은 여성건강보호법의 하원 버전을 통과시켰다. 민주당 하원에서는 가톨릭 신자인 헨리 쿠엘라 의원(텍사스)만이 유일하게 반대했다. 같은 법안의 상원 버전은 2월 공화당의 반대로 부결됐다.

연방 대법원 의견서 초안이 유출되자, 민주당은 재차 상원 통과를 시도했다. 대신 이번에는 원래 법안에 있었던 일부 문구를 삭제했다. “낙태 규제는 ‘백인 우월주의’의 한 형태” 등이다. 법안을 좀더 온건한 형태로 만들어 찬성표를 늘리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이날 표결에 앞서 “여성 인권이 반세기 만에 가장 큰 위협에 처해 있다”면서 “의회 앞에 놓인 법안은 간단하다. 이는 미국인들이 이미 믿고 있는 점, 즉 낙태를 결정할 권리는 선거로 뽑힌 정치인이 아니라 여성에게 있다는 것을 성문화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또다시 공화당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공화당을 이끌고 있는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낙태에 대한 찬반을 떠나 이 문제는 연방의회가 아니라 주의회에 맡길 일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민주당 상원의원 중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만친 의원 역시 기자들에게 <여성건강보호법>은 현재 형태로는 너무 광범위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주의회와 정부에서 결정할 사안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의미로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