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물가상승 책임 공방…옐런 “바이든 정책 일부 기여” 시인

한동훈
2022년 05월 6일 오전 11:48 업데이트: 2022년 05월 6일 오후 12:58

일각선 “대중 관세가 원인”…철회 요구
옐런 “막대한 지출, 인플레 환경에 기여”

미국 일각에서 인플레이션 원인으로 대중 무역관세를 지적하는 가운데,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규모 인프라 법안이 한 요인이라고 시인했다.

옐런 장관은 4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백악관의 막대한 지출이 현재 인플레이션 환경에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라며 “다양한 경제적 위험 때문에 정당화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행정부 내부에서는 인플레이션 완화를 위한 방안을 놓고 대중 무역관세에 관한 찬반 논쟁이 치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옐런 장관은 지나 레이몬도 상무장관과 함께, 대중 관세 완화를 주장한다. 반면, 캐서린 타이 USTR 대표는 대중 관세가 급선무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대중 관세를 중국과 협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카드로 놔둬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날 옐런 장관은 “인플레이션은 수요와 공급의 문제”라며 “미국 구조 계획으로 집행된 지출이 수요를 충족했다”고 말했다. 공급보다 수요가 많으면 물가가 올라가기 마련이다.

미국 구조 계획은 1조9천억달러(약 2420조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 법안이다. 옐런 장관은 “충족(feed)”이라는 온화한 표현을 썼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풀어놓은 막대한 자금이 물가 인상의 한 원인이 됐음을 인정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40년 만에 겪는 최악의 인플레이션 등으로 역대 최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불만은 오는 11월 열리는 중간선거에도 민주당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옐런 장관은 미국의 인플레이션에 대해 “급격한 경기 침체를 피하고 완전 고용을 촉진하려는 바이든 정부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며 바이든 대통령과 행정부를 옹호하는 발언도 덧붙였다.

옐런 의장은 경제 전반에 대한 전망도 밝혔다. 글로벌 공급망 차질로 인한 원자재 가격 급등, 우크라이나 전쟁의 파장, 글로벌 경제의 낮은 성장 전망 등 위험요소가 범람하고 있다고 걱정하면서도 “미국 경제는 견고하게 성장하고 연착률할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미국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능숙하고 또한 운이 좋아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연준은 이틀간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끝에 4일 연방기금금리(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해 0.75~1%로 올렸다.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서다. 금리를 0.25%포인트씩 조절하던 연준이 단번에 0.5%포인트 올린 것은 22년 만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날 FOMC 회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너무 높은 인플레이션에 가격 안정을 회복하려면 최대한 빠르고 효과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며 향후 몇 차례 빅 스텝(0.5%포인트 조정)을 내디딜 가능성을 시사했다. 경제에 미칠 파장을 우려해서인지 미국 경제가 (안전하게) 연착륙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언급했다.

<사진>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에서 재계 총수 및 최고경영자(CEO)들과 채무한도에 대한 논의하는 가운데,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2021. 10. 6 | Kevin Lamarque/로이터/연합

미국인 38% “바이든 인프라 정책이 물가 상승 원인”

지난 3월 NBC 뉴스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38%가 물가 상승의 원인으로 바이든 대통령과 정책을 지목했다. 에머슨대학 설문조사에서는 응답 비율이 39%로 나왔다.

경제학자들과 시장 전문가들도 같은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지난해 이 인프라 법안이 발의되자 “인플레이션 압력을 촉발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서머스 전 장관은 당시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한 글에서 “이 법안이 향후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거나 금융안정을 위협하지 않도록,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 정책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1년 후 서머스 전 장관은 WP에 보낸 또 다른 기고문에서 백악관이 경고에 충분히 주의하지 못했으며 더 나은 재건 정책도 위험에 빠뜨렸다고 분석했다.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 금융·구조조정 전문가로 활동한 스티븐 래트너도 비슷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지난해 엄청난 돈을 풀어낸 인프라 법안이 현재 소비자 물가지수(CPI) 상승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래트너는 지난달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글에서 “바이든 행정부 초기에 통과된 1조9천억 달러 규모의 미국 구조 계획은 이례적인 정책 실수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작년 10월 샌프란시스코 연준은 연구논문을 통해 미국 구조 계획이 올해 인플레이션 상승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를 분석했다.

PCE는 가계와 민간 비영리기관이 쓴 모든 비용을 합산한 것이다. 연준이 선호하는 물가분석 지수다. 지난 3월 미국의 PCE 물가지수는 6.6%로 사상 최대 폭등세를 보였다.

샌프란시스코 연준 논문에서는 인프라 법안으로 인한 통화팽창이 1960년대 기록적 인플레이션을 일으킨 통화팽창과는 분명히 다르다며 선을 그었지만, 몇 달 후 발표한 보고서에서 2조 2천억 달러 규모 ‘코로나 구호 및 경제안정법(케어스법·CARES Act)’과 인프라 법안 모두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전례 없는 직접적인 지원 투입으로 오늘날 인플레이션 환경에 기여했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 편집위원 출신의 경제 전문가 스티븐 무어는 지난 2월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정부의 재난 지원금 지급과 인프라 투자를 “과잉 지출”이라고 부르며 “이번 인플레이션 해일의 기폭제가 됐다”고 평가했다.

무어는 현재 미국을 괴롭히고 있는 인플레이션을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직후 시행한 정책으로 인한 자해”라고 규정했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은 인플레이션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취임 후 지금까지 15개월 내내 일축해왔다. 경기 부양책과 구제 법안이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가 정부 출범 초기부터 제기됐지만, 바이든 행정부 관료들은 이를 극구 부인했다.

백악관은 물가가 오르면 연준 관계자를 불러들였고, 연준 관계자는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말까지 “인플레이션은 정점이 지나갔다”고 주장했고, 올들어 인플레이션이 치솟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푸틴의 물가 상승”이라고 부르고 있다.

미국의 물가 상승이 계속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정점에 달했으며 점차 완화될 것으로 관측했다. 하지만 물가 상승이 이어지면서 연준의 올해 목표치인 2%를 훨씬 웃돌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들도 많다.

다음 주 발표되는 미국의 4월 물가상승률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이 기사는 앤드류 모런 기자가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