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맨해튼 검찰, 트럼프 형사 기소…트럼프는 “정치 박해”

한동훈
2023년 03월 31일 오후 1:58 업데이트: 2023년 03월 31일 오후 1:58

공소시효 2년인 ‘회사 문서 조작’ 경범죄 혐의
검찰, 공소시효 5년 선거법 위반으로 격상 시도
트럼프·공화당 “맨해튼 지검장, 소로스 돈 받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기업 문서 조작 혐의로 형사기소됐다. 역대 전·현직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뉴욕 맨해튼 대배심은 트럼프에 대한 기소에 찬성했다. 트럼프 측 변호사 역시 에포크타임스에 기소 사실을 확인했다.

미국의 대배심은 피고의 유무죄를 가리지는 않는다. 형사사건에서 피고가 기소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는지만 판단한다.

맨해튼 대배심은 지난 수주간에 걸쳐 검찰이 제시한 증거와 증언 등을 검토해 기소 여부를 고민해왔다. 대배심원 23명 중 과반(12명 이상)이 찬성하면 기소가 결정된다. 즉, 이번 기소 결정은 12명 이상의 대배심원이 찬성했다는 의미다. 정확한 찬성 인원은 알려지지 않았다.

현재 트럼프에게 적용된 혐의는 회사 장부 조작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 혐의만 적용된다면 뉴욕주 법률상 경범죄에 해당한다. 맨해튼 검찰은 이를 연방법인 선거법을 위반한 중범죄로 입증하려 하고 있다. 논리의 핵심은 유권자들로부터 성추문을 감추기 위한 의도가 있었느냐다.

성추문 의혹은 2011년부터 10년 이상 제기된 것이다. 한 성인물 여배우가 2006년 네바다주의 골프장에서 트럼프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트럼프의 변호사 마이클 코헌은 트럼프의 지시로 그녀에게 13만 달러를 넘겨줬다고 말했다. 코헌은 성추문이 재탕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입막음 목적이라고 증언했지만, 2018년 3월 증언에서는 개인 자금으로 줬다고 했고 같은 해 8월에는 트럼프 회사의 ‘법률 자문 비용’으로 변제받았다고 했다.

코언의 법정 증언을 계기로 트럼프를 상대로 ‘회사 문서 조작’ 혐의가 제기됐으나, 2019년 이 혐의를 검토한 당시 맨해튼 지검장이자 사이러스 밴스 주니어는 결국 기소를 포기했다. 밴스 주니어 지검장은 ‘트럼프 저격수’를 자처한 인물이었으나, 선거법 사건으로 끌고 가다가는 법원에서 기각될 위험이 크다고 판단했다. 그는 결국 트럼프 일가 비리로 수사를 전환했다.

후임자인 앨빈 브래그 현 지검장은 이 사건을 다시 끄집어냈다. 전임자가 포기했던 선거법 위반 혐의를 입증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트럼프 그룹 전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앨런 와이셀버그를 압박해 트럼프에게 불리한 자료를 얻어내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공소장이 공개되지 않아 정확한 기소 내용은 알 수 없지만, 혐의 입증 과정에서는 여전히 트럼프 전 변호사인 코헌의 증언에 상당 부분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코헌의 발언이 얼마나 일관됐는지도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맨해튼 검찰의 기소 입증이 쉽지 않으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저명 법학자인 앨런 더쇼비츠 전 하버드 로스쿨 교수는 뉴욕주 법률 위반을 연방 선거법 위반으로 입증할 법적 근거가 희박하다면서 “연방법을 빌려다가 심각한 실질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처럼 보이게만 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더쇼비츠 전 교수는 에포크타임스에 “지난 60년간 내가 본 사건 중 최악의 검찰 권력 남용”이라고 평가했다.

사건 공소시효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뉴욕주 법률상 경범죄인 ‘회사 문서 조작’의 공소시효는 2년이다. 다만, 이 행위가 다른 범죄를 은폐하기 위한 목적의 ‘중범죄’일 경우 공소시효는 5년으로 늘어난다.

만약, 법원이 공소시효(2년) 만료로 판단하면, 검찰은 피고가 뉴욕주 밖에 머무는 기간에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는 조항을 적극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에도 트럼프가 뉴욕을 자주 오갔다는 점에서 복잡한 공방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당사자인 트럼프 측은 민주당 소속인 브래그 지검장이 사법 시스템을 무기로 활용해 차기 대선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인 자신을 끌어내리려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트럼프는 성명을 통해 “이는 역사상 최고 수준의 정치 박해와 선거 개입”이라며 성공한 기업가였던 자신이 정치권에 발을 들인 그 순간부터 민주당이 부당한 공격을 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열심히 일하는 미국 국민들의 적인 급진좌파 민주당 당원들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려는 운동을 파괴하려는 마녀사냥을 해왔다”고 말했다.

트럼프 측 변호사 알리나 바하는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부패하고 왜곡된 미국 사법 제도와 역사의 희생자”라며 “그는 (무죄가) 입증될 것”이라고 논평했다.

정치권은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공화당은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백악관과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분위기다.

백악관은 에포크타임스의 논평 요청에 이번 기소에 대해서 어떠한 입장도 없다고 밝혔다.

민주당 소속 척 슈머 상원의장은 “전직 대통령이라도 법 앞에서는 여느 미국 시민과 똑같다”며 “트럼프는 자신의 운명이 걸린 이번 사건에서 사실과 법에 따라, 정치가 아닌 사법 시스템과 배심원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 대선 잠룡인 론 드산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브래그 지검장 배후에 좌파 거물 조지 소로스가 있으며, 평소 정치적 언행에 비춰 볼 때 상황이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은 “맨해튼 지검장은 우리 법률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저해하고 있다”며 브래그 지검장이 소로스의 자금을 받고 있으며, 뉴욕에서 폭력범 기소를 줄이고 중범죄 절반 이상을 경범죄로 낮추는 등 잘못된 사법 정책을 도입했다고 비판했다.

이번 기소 배후에 소로스가 있다는 지적은 트럼프 측도 제기하고 있다. 트럼프 측 대변인은 앞서 지난 주 에포크타임스에 보낸 성명에서 “조지 소로스가 자금을 지원하는 맨해튼의 급진좌파 민주당 검사가 마녀사냥을 다음 단계로 끌어올리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의혹은 성인물 여배우가 2006년 7월 네바다주의 한 골프장에서 트럼프와 만나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이 여성은 2011년부터 다수 매체에 이 같은 내용을 말해왔으며, 2018년에는 트럼프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가 기각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에 비판적인 주류 언론이 성추문 입막음을 부각하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소 내용과 입증 가능성 자체보다도 이를 계기로 트럼프에게 ‘성추문’ 꼬리표를 붙이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이번 사건이 차기 대선에서 오히려 트럼프 돌풍의 핵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더쇼비츠 전 교수는 “(유죄 판결이 나오더라도) 트럼프가 항소하면 뒤집힐 것”이라며 “그때쯤이면 더 깊은 선거 와중에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판결이 뒤집히면서 트럼프 측의 상승세를 강화하거나 유권자 집결을 촉진할 수 있다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 이 기사는 개리 바이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