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무부, 중국어 채널 ‘글로벌 만다린’ 설립…中 공산당 영어권 선전공세 맞대응

Qin Yufei, China News Team
2019년 12월 2일 오후 4:59 업데이트: 2020년 01월 2일 오전 11:37

미국이 글로벌 중국어 미디어 설립을 추진하며 중국 정부의 영어권 언론 공세에 대응하고 있다. 미중 양국이 무역, 기술 분야에 이어 상대국 언어를 활용해 미디어 전쟁에 돌입한 모양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미국의 소리(VOA)와 자유아시아방송(RFA)이 공동으로 ‘글로벌 만다린’이라는 새로운 디지털 방송 네트워크를 개설해 단계적으로 구축해나갈 계획이다. 만다린은 ‘중국 표준어’라는 의미다.

VOA와 RFA, 두 방송 모두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미국의 이념을 전 세계에 전파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중국은 최근 CCTV 영어채널 CGTN과 중국의 소리 등 영어방송에 집중투자해 영어권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글로벌 만다린’은 TV는 물론 소셜미디어, 인터넷, 동영상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방송한다. 미국 정부의 미디어 자원을 집중해 24시간, 연중무휴로 전 세계에 중국어로 뉴스와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다.

또한 전 세계의 젊은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뉴스와 생활, 문화, 스포츠 등 흥미를 끌 수 있는 연성 콘텐츠 제작에도 주력한다. 연간 예산은 500만~1000만 달러(약 58억~118억 원)로 증액될 가능성도 있다.

미 국무부는 지난 2017년 방송 부문을 재편성해 VOA와 RFA를 글로벌미디어국(USAGM)에 편입했다. 현재 VOA와 RFA 중국어판 시청(청취)자는 주간 6천500만명 수준이다.

중국 공산당의 영향력 확대 경계

SCMP에 따르면 미 국무부의 이번 ‘글로벌 만다린’ 출범은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는 중국에 맞서 미국의 ‘소프트 파워’를 유지하려는 목적이다. 중국 공산당이 대내적으로는 언론을 검열하고 대외적으로는 공산주의 선전을 확대하자 이에 대한 견제가 필요했다는 분석이다.

지난 9월 VOA는 직원들에게 보낸 통지문에서 “중국 공산당 관영매체는 중국 공산당이 내세우는 이념과 가치, 잘못된 정보를 홍보한다”며 새로 출범할 중국어 디지털 브랜드를 그 대안으로 규정했다.

중국 공산당은 최근 영어 방송 채널을 늘리고 사회주의 이념과 문화 전파에 엄청난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지난 2009년부터 영어 등 수십 개 언어 채널에 들인 비용이 최소 66억 달러(7조7천억원)으로 추산된다.

공산당 관영언론 CCTV가 간판을 바꿔단 것도 같은 맥락이다. CCTV는 지난 2016년 영어뉴스 채널명을 CGTN(중국 글로벌TV네트워크)로 변경하고 140개국에 TV프로를 제공한다.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전파한다는 취지다.

지난해 3월에는 중국국제라디오방송국과 중국국가라디오방송국을 통합한 영어라디오 ‘중국의 소리’로 만들었다. 미국의 소리(VOA)와 비슷하다.

이밖에 중국국제방송(CRI)은 현재 65개 언어로 각국에서 라디오 방송을 진행한다.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에서도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의 대외선전 제지

이와 같은 중국 공산당의 대외선전 행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제동이 걸렸다.

미국 민주당의 패트릭 리히 상원의원, 공화당의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과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등은 지난해 1월 당시 미국 법무장관이던 제프 세션스에게 공동 서한을 보내 중국과 러시아가 자국 내에서 언론을 엄격히 통제하면서 서방국가의 대(對) 언론 개방성을 이용해 개방적 이미지로 위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9월 미 법무부가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의 관영 매체 신화통신과 CGTN에 ‘외국 대행기관’으로 등록하라고 통보했다. ‘대행사 등록’은 해당 미디어들을 언론사가 아니라 중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로비 단체로 규정하겠다는 의미다.

미 외국대행사등록법(FARA)은 미국 내 개인이나 기관이 특정 국가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활동을 할 경우 법무부에 등록하고 주기적으로 관련 내용을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디어가 외국 대행기관으로 등록되면 이익단체 취급을 받는다. 사실상 언론사 지위를 잃게 된다.

지난 6월 미국 의회를 취재하는 해외 특파원들의 모임인 라디오TV외신기자협회(RTCA)는 CGTN의 기자증 재발급을 거부했다. CGTN의 워싱턴지국인 CGTN 아메리카가 지난 2월 미 법무부에 외국 대행기관으로 등록되어서다. CGTN 아메리카는 앞으로 미 의원이 초청하지 않는 한 의회를 출입할 수 없게 됐다.

중국 공산당의 다른 대외 선전기관에 대한 제재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미 국방부는 미국 대학교 내에 설립된 공자학원에 중국어 교습 프로그램 자금 지원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후 웨스트 켄터키 대학, 인디애나 대학, 로드 아일랜드 대학, 미네소타 대학 등 많은 대학이 연이어 공자학원을 폐쇄했다.

워싱턴의 프리덤하우스는 지난 6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 공산당은 “해외 화교 커뮤니티에 간섭하고, 법치를 약화하며, 정치 간섭 채널을 구축하는 방법으로 전 세계 민주 통치를 갈수록 해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지난해 여름 중국 정부가 농산물 수입을 축소해 미국 농민들을 압박,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무역 정책에 반대하도록 한 일을 사례로 제시했다.

미중 갈등은 전 세계와 중국 공산당의 대결

이러한 미국 정부의 행보에는 중국과의 갈등에 대한 미국의 인식 변화가 담겨 있다. 즉, 중국과의 갈등이 공산주의와의 대립이며, 경제영역에만 그치는 것이 군사·이념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의 갈등이라는 인식이다.

지난 4월, 미국의 싱크탱크인 뉴 아메리카와 애리조나 대학이 공동 주최한 ‘미국미래안보포럼’에서 미 국무부 키론 스키너 정책기획국장은 중국 공산당과 미국의 경쟁은 양측의 국가이익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문명과 이념 등 더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있다고 지적했다.

스키너 국장은 미중간의 이런 경쟁과 대결 관계는 냉전 시대의 미국과 소련의 대립 정도를 넘어서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과거 미-소간 문명과 이념의 대결은 서구 사회 내의 대결에 불과했지만, 현재 중국의 이념과 문명구조는 서방세계가 인식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며 “미국은 이전에 이런 상황을 경험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 4월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중국 공산당은 미국의 민주주의에 위협을 조성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경제적 위협, 스파이 문제, 미국의 대만지지 등 중국 공산당의 국제적 영향력에 대항하는 각종 정책을 펴고 있으며 “중국 공산당과 대규모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 후 10월 30일, 폼페이오는 뉴욕 허드슨 연구소에서 가진 연설에서 “미국은 현재 중국 공산당이 미국의 가치관에 대해 적대적임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그동안 중국인과의 우정을 매우 소중히 여겨 왔지만 중국 공산당과 중국인은 다르다”고 지적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달 8일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기념식에서 “중국 공산당은 자유 세계의 최대 위협”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미중 대결은 결코 양국 간 충돌이 아니며, 이는 평화를 염원하는 전 세계 시민과 중국 공산당의 대결”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