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공화당, 민주당 주도한 선거 법안 필리버스터로 저지

한동훈
2021년 10월 21일 오후 2:57 업데이트: 2021년 10월 21일 오후 10:08

민주당, 사전투표·우편투표 영구히 확대하는 법안 표결 시도
현장투표 때 신분증 대신 은행카드도 허용…공화당 강력 반대

미국 공화당 상원이 19일(현지 시각) 민주당이 주도하는 ‘투표 자유 법안'(Feedom to Vote Act)을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저지했다.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법안 통과가 좌절되자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분명히 하고 싶다”며 “모든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미국인들에게 보장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 관한 토론을 저지했다”고 밝혔다.

공화당을 이끌고 있는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선거는 연방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되며 각 주에 맡겨야 한다”며 필리버스터를 통한 저지가 필요한 일이었다고 강조했다.

현재 민주당은 상원에서 다수당을 차지했지만, 공화당은 소수당에 보장된 필리버스터 권한을 발동해 맞서고 있다.

다수당이 필리버스터를 우회하려면 상원 전체 100석 중 60표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하지만, 쉽지는 않다. 현재 구도상 공화당 의원 10명 이상의 이탈이 필요하지만, 이번에 공화당은 한 명도 이탈하지 않는 강한 결속력을 보이며 ‘투표 자유법안’에 반대했다.

공화당은 이 법안이 선거 운영을 각 주(州)정부에 맡긴 헌법 정신을 벗어나 연방 정부가 미국 모든 주의 선거를 좌우하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며 반대 의사를 명확히 해왔다.

미국의 선거는 주의회가 제정한 주법에 따라, 카운티(한국의 군[群]에 해당)에서 치른다. 즉, 선거를 치르는 주체가 연방정부가 아니라 지방당국이다.

현재 미국 각 주에서는 공화당 우세 지역을 중심으로 ‘선거청렴법’이 속속 제정되고 있다.

‘선거청렴법’은 지역마다 ‘선거 개혁법’ 등으로 불리지만, 선거 편의성을 확대하면서도 본인 확인을 강화해 우편투표의 안전성을 높이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작년 대선 이후, 대규모 사전투표·우편투표 시행에 따른 부작용이 크다는 여론 공감대에 기반을 두고 있다.

반면, 이번에 좌절된 ‘투표 자유 법안’은 사전투표를 확대하고 우편투표를 영구히 더 쉽게 만드는 내용이 담겼다. 공화당의 ‘선거청렴법’을 연방정부 차원에서 무력화하는 성격이다.

민주당이 추진해온 이 법안은 △모든 유권자의 우편투표권 자동 보장 △모든 주에서 부재자 투표 온라인 신청 허용 △우편투표시 신분증 제시 의무 삭제 △우편투표지 서명 확인 시 허가요건 강화 △현장투표시 은행카드 등 사진 없는 신분증 제시 허용 △선거일 법정 공휴일 지정 △중범죄 전과자 투표권 회복 등을 규정하고 있다.

슈머 원내대표는 이 법안과 관련해 트위터에 “우리의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투표를 보호하고, 선거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신뢰를 새롭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법안 추진은 민주당의 두 번째 입법 시도다. 앞서 지난 6월에는 비슷한 법안인 ‘국민을 위한 법안(For the People Act)’을 표결 시도했으나 마찬가지로 상원에서 공화당에 의해 저지됐다.

민주당과 주요 언론들은 공화당의 ‘선거청렴법’에 대해 “투표권 제한” “유색인종의 투표를 어렵게 만드는 조치”라며 강력하게 비판해왔다. 유권자의 신분증 확인을 강화하고 부재자 우편투표를 까다롭게 만들면 소수그룹에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이미 올해 8월초 미 연방 대법원에서 기각됐다(PDF).

한편, 이번 법안 부결로 민주당의 필리버스터 변경 또는 폐지 요구가 다시 불붙을 것으로 보인다. 의회 안팎에서는 민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에 대한 성토 목소리가 높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민주당 일각에서는 공화당의 필리버스터가 성가시더라도 필리버스터 제도를 무력화하거나 없애는 것은 의회 민주주의에 어긋난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민주당 내에서 가장 보수성향으로 평가되는 조 맨친 의원은 “필리버스터를 수호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온건파인 커스턴 시네마 의원은 “필리버스터는 상원에서 소수당의 권리를 보호하는 핵심 도구”라며 같은 의견을 나타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민주당의 선거법안을 옹호하면서도 필리버스터 폐지에는 고개를 저었다. 다만, 제도 변경에 대해서는 열린 입장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