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대리전 된 파라과이 대선…대만은 수교국 지킬까?

최창근
2023년 04월 29일 오후 12:52 업데이트: 2023년 04월 29일 오후 1:23

대만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국제사회의 눈길이 이번 주말에 치러질 남미 한 국가의 선거에 쏠리고 있다. 중미의 파라과이이다.

4월 30일 치러질 파라과이 대선에서는 좌파와 우파를 대표하는 유력 후보 두 사람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현 집권당인 우파 후보는 당선될 경우 대만(중화민국)과 외교관계를 지속하겠다 밝혔지만 좌파 후보는 대만 대신 중국(중화인민공화국)과 손을 잡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는 82년간 외교관계를 지속해 온 온두라스가 올 3월 단교함으로써 공식 수교국이 13개밖에 남지 않은 대만 정부를 긴장시키는 사안이다. 동시에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 간 치열한 외교전의 현장이다.

선거를 이틀 앞둔 4월 28일 현재,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는 집권 콜로라도당(ANR)의 산티아고 페냐 후보와 야권 연합인 급진자유당(PLRA)의 에프라인 알레그레(60) 후보이다.

5년 단임제를 채택하고 있는 파라과이 선거법상 현 마리오 아브도 베니테스 대통령은 출마하지 못한다.

집권당(우파)와 야권연합(좌파) 간 정책 공약 중 가장 선명하게 대비되는 분야는 외교이다. 집권 여당 산티아고 페냐 후보는 대만과 외교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현 마리오 베니테스 대통령과 일치한다.

반면 에프라인 알레그레는 중국과 수교의 불가피성을 천명했다. 배경에는 ‘경제’ 문제가 자리한다. 농업이 주요 산업인 파라과이의 주요 수출품목은 쇠고기와 대두(大豆)이다. 연간 생산량은 각각 30만 톤, 1000만 톤에 달한다.

중국의 대표적인 쇠고기·대두 수입국이다. 대만과 수교 중인 파라과이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걸려 중국 시장에 접근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에프라인 알레그레 후보는 이러한 상황을 강조하며 “쇠고기와 대두 수출 확대를 위해서는 중국과의 외교관계 정상화가 불가피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는 4월 12일, 현지방송 인터뷰에서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대만과 국교를 단절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만과 파라과이는 1957년 수교 이후 60년 넘게 국교를 유지하고 있다.

현 집권당 소속 페냐 후보는 “대만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미국 CNN 인터뷰에서 “우리는 워싱턴(미국), 예루살렘(이스라엘), 타이베이(대만)라는 지정학적 관계를 계속 안고 갈 것”이라고 강조하여 자유세계 국가와의 외교 관계 유지를 천명했다. 이어 “이러한 삼각형은 파라과이 발전을 위한 구도이다.”라고도 강조했다.

알레그레 후보가 승리하면 대만의 수교국은 12개로 줄어들게 된다. 2016년 차이잉원 현 총통 집권 이후 상투메 프린시페, 파나마, 도미니카공화국, 부르키나파소, 엘살바도르, 솔로몬제도, 키리바시, 니카라과, 온두라스 등 9개국이 단교하고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며 중국과 수교했다.

파라과이마저 단교하면 대만의 수교국은 과테말라, 교황청, 벨리즈, 에스와티니, 아이티, 나우루, 팔라우, 마셜제도, 세인트키츠네비스, 세인트루시아,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투발루만 남게 된다.

이번 파라과이 대선은 작게는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간 대리전이자 크게는 미중 간 외교전쟁이기도 하다. 좌파 알레그레 후보가 승리하면 남미 대륙의 정치 지형이 더욱 왼쪽으로 기울게 된다.

남미 주요 13개국 중 에콰도르, 우루과이 등 두 나라를 제외하고는 모두 진보 진영이 집권하기 때문이다. 2000년을 전후해 남미를 물들였던 이른바 ‘핑크 타이드’가 재현되는 셈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미국은 파라과이 대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지난 4월 1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미국 1강 체제 거부’와 ‘다자주의 강화’를 천명하는 등 ‘탈미국’ 움직임이 속도를 내고 있다. 그 속에서 전통적인 우방인 파라과이마저 중국에 내줄 위기에 처했다.

야권의 알레그레 후보가 당선되면 남미 주요 13개국 중 미국과 비교적 가까운 우파 정권은 에콰도르와 우루과이만 남게 된다. 이 속에서 미국은 3월 27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워싱턴에서 훌리오 아리올라 파라과이 외교장관을 만나 각종 지원을 약속하는 등 파라과이 껴안기에 나섰다.

한편 마리오 아브도 베니테스 현 파라과이 대통령은 중국에 대항하기 위한 자금 명목으로 10억 달러(약 1조4천억원)의 출연을 대만에 요청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베니테스 대통령은 대만과의 협력을 언급하면서 “대만이 비수교국에 60억 달러(약 8조 5천억원) 이상을 투자했다”면서 “(대만이) 파라과이에는 10억 달러를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이것이 우리가 (국민에게) 대만과의 전략적 동맹의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해당 요청에 대만은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으나, 대만의 해외 원조 전담 기구인 국제협력발전기금회가 파라과이 금융발전국(AFD)과 500만 달러(약 71억5천만원) 규모의 신용보증기금 협력 프로젝트에 서명하는 등 지원에 나섰다.

베니테스 대통령은 올해 2월 대만을 공식 방문하여 우호관계를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의 회견에서 “대만은 세계가 필요하고 세계도 역시 대만이 필요하다. 대만은 파라과이의 중요한 우방국이자 전략적 파트너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라틴아메리카 국가의 경제성장률이 평균 -7.4%로 역성장할 때 파라과이는 대만의 도움으로 0.8%만 감소하는 성과를 이룩했다.”고도 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더 디플로맷’은 “파라과이가 대만과 정치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과 무역 관계를 증진하길 원한다면 이는 달성 불가능한 시나리오이다.”라고 전제하며 “미국은 대만의 마지막 중남미 외교 동맹국인 파라과이를 지키기 위해 중국의 영향력을 최대한 막고자 할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미국은 2019년▲대만과 대사급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13개국, 그리고 앞으로 대만과 대사급 외교 관계를 맺을 국가에 대해서는 미국 정부가 경제를 지원하고 안보를 보장한다▲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하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경제 원조를 중단하고, 무역이나 경제 분야에서 불이익을 주며, 외교 관계를 격하한다는 내용을 담은 ‘대만동맹국제보호강화법(‘TAIPEI’ Act)’을 제정하여 대만 수교국 달래기에 나섰으나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된 상태이다. 이 속에서 파라과이 대선 결과와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