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례 폐기, 왜 그렇게 격분할까

롭 나텔슨
2022년 07월 21일 오후 2:00 업데이트: 2022년 07월 22일 오전 6:32

미국 연방 대법원이 오래 미뤄왔던 로 대 웨이드(Roe v. Wade) 사건을 파기한 것에 대한 분노를 이해하려면 정치 공작세력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렇게 분노하지 않는다.

정치 공작세력을 제외한 일반 대중의 시선에서 보면, 그가 낙태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대법원 판결에 분노한 이들의 모습은 비합리적이고 도를 넘어선 것처럼 보인다.

법원의 결정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실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좌파의 반응은 단순한 실망을 훨씬 뛰어넘는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이번 대법원 판결을 본다면 대법관들은 권력을 움켜쥐는 대신 오히려 그것을 내려놓았다. 대법관들은 낙태에 관한 규정이 민주적 절차에 따라 결정되도록 되돌렸다.

파기된 ‘로 대 웨이드’ 판례는 사법부가 세운 위대한 이정표 같은 것이 전혀 아니었다. 그 판례는 낙태권 보장에 찬성하는 정치 평론가 마이클 킨슬리의 표현처럼 ‘엉망진창’이었다. 이번 판결은 사회적 합의를 뒤집은 게 아니다. 대립이 첨예한 문제에서 사법부를 한 걸음 물러서게 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낙태 찬성론자들은 단순한 실망 그 이상의 절망과 분노를 나타낼까. 이미 내려진 대법원 판결은 뒤집힐 수 없는데도 왜 사람들은 거리로 나올까.

이 의문의 해답은 정치 공작세력들, 즉 시위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이들을 살펴보면 얻을 수 있다.

정치 공작세력, 민생 아닌 이슈에만 관심

정치적 이슈는 민심의 관심사를 반영한다. 예를 들어 세금 문제에 있어 어떤 이들은 낮은 세금을, 어떤 이들은 높은 세금을 선호한다. 양쪽 모두 그 방식이 더 낫다고 믿기 때문이다. 환경규제도 비슷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들 공공의 이익을 위해 더 균형 잡힌 규제를 모색한다.

하지만 정치 공작세력에 정치적 이슈는 그저 무기일 뿐이다. 다른 사람을 쓰러뜨릴 도구다. 정치공작의 목적은 대개 ▲자신의 지지층 결속과 투표율 향상 ▲상대방 지지층의 투표율 하락 ▲부동층 흡수 ▲상대방에 대한 부동층의 이탈 촉진 ▲상대방 분열 ▲불리한 소식에 대한 물타기 등으로 요약된다.

한 선거에 A, B 두 후보가 출마해 경쟁을 펼친다고 가정하자. A후보의 심각한 성격적 결함이 밝혀졌다면, A후보 진영은 대응방안을 논의한다.

이때 흔히 쓰이는 방법이 물타기다. A후보 진영은 상대방인 B후보 역시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오래된 신문 기사 등을 찾아내 유포한다.

만약 B후보의 지지층이 낙태 찬성론자들이라면, A후보 진영에서는 B후보가 과거에 낙태를 반대했거나 낙태 반대 인사를 지지했다는 소문을 퍼뜨리며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비난한다.

이때 B후보가 세금 인상안(혹은 인하안)을 공약으로 내세웠다면, A후보 진영은 그 반대인 세금 인하안(혹은 인상안)을 대대적으로 홍보할 수도 있다.

이는 세금 인하 혹은 인상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유권자의 더 나은 삶을 위한 목적이 아니다. 그저 자신에게 불리한 소식을 덮어버리고, 부동층을 흡수하기 위한 정치 공작일 뿐이다.

물론 이러한 정치 공작이 효과를 거두려면 A후보의 공약이나 비판이 그럴듯해야 한다. 최소한 언론이 A후보 편에 서 있어야 한다.

정치 공작세력에 있어 정치적 이슈는 상대방을 쓰러뜨리기 위한 수단이다. 거기에는 진정성이나 공익적 목적이 하나도 없다.

고대에서부터 존재했던 선동 전략전술

어떤 독자들은 미국의 급진적 사회운동가 숄 앨린스키를 떠올릴 수 있다. 사실 이런 정치적 선동은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정치적 목적에 의해 사용돼 왔다.

많은 정치인, 정치 공작세력과 그 부역자들은 자신이 선동가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들에게 정치 공작은 어쩌면 비즈니스의 일부다.

필자는 1990년대 미국 몬태나에서 풀뿌리 운동가로 활동하며 직설적이고 솔직한 화법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저 자신의 자연스러운 모습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그때 필자는 한 공화당 의원에게서 “어떻게 이렇게 ‘정직하게’ 일하냐”는 질문을 받고 큰 충격을 받았었다.

소신이라고는 없었던 그 의원은 필자가 구축한 이미지와 그동안 공론화한 정치적 이슈들을 그저 정치적 속임수일 뿐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에게 정치는 겉보기만 보여주는 비즈니스였다. 그와 다른 의원들은 그 후로도 그렇게 이미지 정치를 이어 나갔다.

선동의 폐해를 예견한 미국의 건국세력

다행히도,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정치 선동꾼들과 그들이 일으키는 폐해를 잘 이해했다. 그리하여 건국의 아버지들은 세심한 고려 끝에 선동꾼들이 활개 칠 여지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견제 장치를 헌법 조문에 포함했다.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일부 개인적 권리와 권한들을 완전히 배제했다.

그중 하나가 ‘화폐를 발행할 권리’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화폐발행권을 연방정부에만 부여했다. 그 결과 각 주(州)의 선동꾼들은 물가를 조작하는 방법으로, 빚을 지고 있는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할 방법이 원천 차단됐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또한 가족법, 건강법과 같은 사안은 주(州)의 고유한 권한으로 못 박았고, 이로 인해 연방정부에서 이러한 사안으로 여론을 자극하는 선동꾼들이 사라지게 됐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미국 역사를 통틀어 연방정부나 연방의회의 정치인들은 외교정책, 관세, 노예제, 남북전쟁 후유증 등 상대적으로 제한된 이슈에 있어서만 여론 조작을 시도할 수 있었다.

헌법에 명시된 권력 분립은 정치인이나 선동꾼들이 정치적 이슈 대부분을 쥐락펴락하지 못하도록 하는 훌륭한 견제장치로 기능해왔다.

달라진 연방주의, 어떻게 다시 쓰게 됐나

그렇지만 필자가 에포크타임즈에 연재했던 시리즈 칼럼 <연방대법원은 어떻게 헌법을 다시 썼는가?>에서 서술했듯이, 대법관들은 헌법에 마련된 정부 권력 제한 기능을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에 대부분 멈춰 세웠다.

대법관들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 결과의 하나로 미국에서는 정치 선동꾼들이 휘두를 수단이 늘어나게 됐다.

1973년 대법원은 낙태권을 연방정부 차원에서 인정하는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남겼다. 이후 정치권은 낙태를 두고 서로 치고받으며 난투극을 벌이게 됐다. 공화당의 선동꾼들은 낙태 이슈를 이용해 복음주의자, 천주교 신자, 유대인, 생명 존중 성향의 유권자를 자극, 공화당을 지지하게 했다. 민주당의 선동꾼들은 인종적 적대감을 이슈화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낙태 문제를 이용했다.

낙태 문제는 공화당보다 민주당에 더 중요해졌는데, 이는 경험과 지식이 모자란(naive) 미혼남녀를 유혹할 때 내세우는 ‘근심없는 성관계(carefree sex·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성관계나 즉흥적 성관계, 동성애 등의 의미로도 쓰임-편집부)’ 패러다임에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국지 언론은 보수보다 진보를 선호하기 때문에 낙태를 찬성하게 됐다. 국가적 규모의 이슈일수록, 국가적 이슈를 다뤄온 전국구 미디어의 중요성이 커지게 된다.

‘로 대 웨이드’ 판례 파기, 좌파에 재앙

대법원이 낙태 정책을 연방정부에서 주(州) 정부(혹은 의회) 소관으로 옮긴 것은 공화당 내 일부 정치 선동꾼에게는 실망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과 좌파에게는 재앙 수준의 사건이다. 일반적인 미국인의 일상은 연방정부보다는 주 정부의 영향을 더 많이 받게 된다.

국가 고위직 혹은 특수직에 몸담은 민주당 정치인이나 선동꾼들에게 주 정부는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낙태 정책의 ‘영구적인 탈연방화’는 민주당에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의 정치 선동꾼과 그 동료들은 이 문제를 다시 연방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미국의 전국지 언론들에 의해 대대적으로 보도된 광범위한 낙태권 보장 요구 시위가 그 시작이다. 그다음 수순은 헌법을 위반하더라도 낙태 이슈에 대해 연방의회 차원에서 다루고 관련 법안을 발의하는 일일 것이다.

반면, 공화당과 보수주의자들에게 낙태 정책의 탈연방화는 다른 정책 영역에서도 따라야 할 모델이 됐다.

헌법이 연방 정부에 결정할 권한을 주지 않았지만, 연방정부가 결정권을 쥐고 있는 여러 이슈에 관해, 그 결정권을 주 정부와 의회에 돌려주는 일은 좋은 정책을 만들고 헌법을 충실히 따르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 일이 될 수 있다.

공화당 의원과 보수인사들에게 그것은 또한 매우 좋은 정치이다.

* 글쓴이 로버트 G. 나텔슨은 헌법학 교수 출신으로 미국 헌법의 제정 과정과 의미 등에 관해 권위를 인정받는 전문가다. 그가 쓴 글은 ‘하버드 로 리뷰’, ‘예일 로 리뷰’ 등 미국 최고 수준 로스쿨의 법률 저널에서 자주 인용된다. 현재 미국 덴버에 위치한 독립 연구소의 헌법학 선임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