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법관 “동성결혼·피임 인정한 판결도 재검토해야”

한동훈
2022년 06월 27일 오후 12:34 업데이트: 2022년 06월 27일 오후 12:34

미국 연방대법원이 낙태를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50년 전 판례를 “처음부터 터무니없이 잘못됐다”며 파기한 가운데 피임, 동성애, 동성혼에 대한 판례도 재검토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낙태권을 보장한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례를 파기한 대법관 6명 중 한 명인 클라렌스 토머스 대법관은 단독의견에서 “‘적법 절차 조항’에 의존하고 있는 피임과 동성 관계, 동성 결혼에 대한 판결을 재고해야 한다”고 밝혔다(의견서 PDF).

‘적법 절차 조항’은 미국 수정헌법 제14조에 포함된 것으로 “어떠한 주(state)도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어떠한 사람의 생명, 자유 또는 재산을 박탈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이 조항을 근거로 미국에서는 ‘사생활의 권리’가 보장돼 왔으며, 1973년 판례에서도 낙태를 ‘사생활의 권리’로 해석해 보장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지난 24일(현지시각) 이 판례를 파기하면서 새뮤얼 앨리토 대법관이 작성한 다수의견에서 “해당 조항(수정헌법 제14조)은 헌법에 명시되지 않은 일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권리는 미국의 역사와 전통에 깊게 뿌리내리고 질서를 수반한 자유의 개념을 내포해야 한다”며 낙태할 권리를 뒷받침하는 조항이 아님을 강조했다. 낙태권이 미국의 역사와 전통에 뿌리내리거나 질서와 자유가 조화된 권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토마스 대법관은 단독의견을 발표하면서 “‘적법 절차 조항’에 낙태 보장이 담겨 있지 않은 두 번째 이유, 더욱 근본적인 이유를 강조하기 위해 따로 글을 쓴다”며 단독의견 발표의 취지를 밝혔다.

그는 “상당한 역사적 증거에 따르면, ‘적법 절차’는 단지 한 사람의 생명, 자유 또는 재산을 박탈할 때 행정 및 사법 행위자들에게 법률과 관습법을 준수하도록 요구해왔음이 드러난다”고 했다.

토마스 대법관은 미국 수정헌법 제14조가 정부 혹은 사법부가 개인의 생명·자유·재산을 침해할 때, 법률과 관습법에 근거해 이를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는 또한 새뮤얼 앨리토 대법관이 작성한 다수의견을 인용, “‘이 판결의 어떤 것도 낙태와 관련 없는 다른 판례에 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이해돼선 안 된다’는 데 동의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향후 우리는 그리스월드, 로런스, 오버게펠을 포함해 적법 절차 판례를 모두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세 판례는 각각 피임, 동성애, 동성혼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다. 모두 ‘적법 절차 조항’에 근거했다. 토마스 대법관은 “대법원은 판례를 바로잡을 의무가 있다”고 했다. 적법 절차 조항으로 피임·동성애·동성혼을 인정한 판례가 사실상 오류라는 견해다.

일부 언론은 낙태권을 폐지한 대법원 판결이 미국을 분열시킨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다수 대법관은 각 주(州·state)에서 결정할 일을 50년 전 대법원이 부실한 논리로 개입하는 바람에 오랫동안 미국을 분열시켜왔으며, 이제는 해결해야 할 때가 됐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은 다수의견에서 “(‘로 대 웨이드’ 판례는) 논리가 매우 약했고, 해로운 결과를 가져왔다”며 “낙태 문제에 대한 국가적 해결을 가져오지 못했고 오히려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분열만 심화했다”고 밝혔다.

이어 “헌법을 준수해, 낙태 문제를 국민이 선출한 대표에게 돌려줘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주민들이 선출한 의원들이 제정한 주(州) 법에 따라 결정하라는 것이다.

이번 판결에 따라 미국 내 50개 주 가운데 최소 26개 주가 낙태를 금지할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이 주도하는 주에서는 지난 수년간 낙태를 금지하기 위한 입법이 이어져 왔다.

13개 주는 ‘로 대 웨이드’ 판례가 파기될 경우 자동으로 즉각 혹은 30일 이내에 낙태를 금지하는 법이 제정돼 있다. 나머지 주는 낙태를 전면 금지하거나, 6주 또는 8주 이후 금지하거나, 15주 이후 금지하는 등 각 지역 현실에 맞춘 금지법을 시행할 예정이다.

반면, 민주당이 주도하는 12개 주는 낙태권을 계속 보장한다. 또한 민주당 주지사나 법무장관이 재직 중인 위스콘신, 미시간주는 낙태 금지법을 집행하지 않을 방침이다. 위스콘신 법무장관은 “주정부는 금지령을 시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