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EU, 반도체 산업 재건에 의기투합…“보조금 경쟁 피할 것”

하석원
2022년 05월 18일 오후 7:49 업데이트: 2022년 05월 18일 오후 8:27

‘쓴 약’된 반도체 공급난…공급망 안정 위해 협력 약속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반도체 공급난 해결을 위해 ‘보조금 경쟁 자제’에 합의했다. 반도체 자립 과정에서 불필요한 힘의 낭비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미국-EU 무역기술위원회(TTC)는 15~16일(현지 시각) 프랑스에서 2차 장관급 회의를 진행했다. 미국과 유럽의 마찰을 해소하고 협력 방안을 모색해 러시아와 중국, 이른바 ‘비시장 경제체’의 경쟁 위협에 맞서기 위해서다.

미국 대표로는 토니 블링큰 국무장관과 지나 레이몬도 상무부 장관, 캐서린 타이 무역대표부 대표가 참석했고, EU에선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경쟁담당 EU 집행위원,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통상담당 EU 집행위원이 참석했다.

회의 후 성명에서 양측은 자국의 반도체 생산 능력을 증대하기 위해 핵심 기술 공급망 협력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미 백악관은 성명을 내고 양측이 첨단 공급망, 인공지능, 국제 공업 표준, 중소기업 사이버 보안 등 10개 분야에서 정책적 협력을 넓혀나가겠다고 밝혔다. 전 세계 식량 공급 안정을 위한 협력 방안도 추가했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회의에서 양측이 반도체 연구 개발과 보조금 규제 원칙을 조율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현재 서방 경제권은 반도체 자체 생산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식했으며, 미국과 유럽은 자국 내 반도체 산업 확장을 촉진하고 있다. 보조금 규제 원칙을 조율해 서로 윈윈하는 방식으로 반도체 산업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지나 레이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이는 모든 사람의 이익에 부합한다”며 “미국과 EU는 조화로운 방식의 투자로 반도체 공급망의 생태 시스템을 촉진해 산업과 국가 안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은 각각 자국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미국)과 에어버스(프랑스) 대한 보조금 문제를 두고 지난 20년 가까이 충돌했다. 이번 회의 참석자들은 정부 지원이 오히려 낭비로 이어지고 마찰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베스타게르 집행위원은 “비록 보조금은 일부 기업의 투자를 끌어낼 수 있지만, 납세자의 세금을 제대로 사용해야 하며, 보조금 경쟁을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한 미국 고위 관리는 “양측이 조기경보체제를 구축하여 앞으로 발생할 반도체 부족을 예측하고 사전에 대응하기로 했다”고 WSJ에 전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중국과 러시아의 ‘비시장’ 행위에 대한 대책도 논의됐다.

타이 미 무역대표부 대표는 “우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드러난 공급망 취약점을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녀는 “서방 지도자와 경제학자들은 더 긴밀한 경제 통합이 평화를 촉진하고 번영을 확대하는 힘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비시장적 결정이며 글로벌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TTC는 5G, 인공지능(AI) 등 신흥기술 분야에서 표준화된 정보를 공유하는 메커니즘을 구축해 국제표준을 수립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이 분야에서 중국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는 점도 명시했다.

최근 몇 년간, 중국 정부는 국제표준 제정에서 더 큰 역할을 맡아 관련 국제기관을 상대로 영향력 확대를 추진해왔다. 이는 서방 국가의 주목을 받았다. 레이몬도 장관은 “비시장 경제 국가가 국제 규범 제정 기관을 통제하면, 미국과 EU를 (시장에서) 배제할 수도 있다”며 미국과 EU가 이 분야에서 중국에 공동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