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說] 장쩌민은 죽었다

편집위원회
2022년 12월 3일 오후 2:21 업데이트: 2022년 12월 26일 오전 10:15

2022년 11월 30일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 장쩌민이 상하이에서 사망했다.

장쩌민의 생애는 수치스러운 삶이었다. 장쩌민은 악정(惡政)을 펼쳤고 중국과 중국인들에게 전례 없는 재앙을 안겨줬다. 장쩌민 통치 시기 중국은 비리가 만연하고 부패 관료가 기승을 부렸다. 장쩌민이 명령한 파룬궁에 대한 잔혹한 탄압과 살아있는 사람에 대한 신체 장기 약탈은 반(反)인류 범죄였다.

장쩌민은 국가에 대한 죄인이자 역사에 대한 죄인이다. 그 죄는 반드시 심판받아야 한다.

장쩌민은 매국노 장스쥔(江世俊)의 아들로 태어나 난징(南京)의 친일 괴뢰정부였던 왕자웨이(汪精衛) 정권 아래 선전부 부부장을 지냈다. 1989년 톈안먼 사태 당시, 공산당 정권의 유혈 진압을 적극 옹호하며 국민의 핏값으로 중국 공산당 최고 권력자로 올라섰다. 그러고는 중국인의 도덕을 파멸로 치닫게 했다.

전임 지도자인 후야오방(胡耀邦) 총리, 자오쯔양(趙紫陽) 총리, 차오스(喬石) 전 전인대 상무위원장 등은 온화하고 개방적이며 교양에 기반을 둔 정치를 추구했다. 공산당의 통제 역시 지금보다 훨씬 느슨했으며, 중국의 법과 제도에 대한 개선이 추진됐다. 사람들은 중국이 긍정적으로 변혁되고 법치국가로 이행(移行)되기를 기대했다.

그 시기, 진선인(真·善·忍,)을 원칙으로 심신 건강과 도덕 향상을 목표로 하는 수련법 파룬궁(法輪功)이 중국에서 보급되기 시작했다. 1억 명의 사람들이 ‘진선인’으로 스스로를 다스린 결과, 중국은 사회의 도덕이 회복되고 향상됐으며 곳곳에서 선행이 목격되고 미담이 들려왔다.

1999년 7월, 파룬궁의 인기를 시기한 장쩌민은 파룬궁에 호의적인 여론을 묵살하고, 최고지도부인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6명(장쩌민을 제외한 전원) 등을 포함한 당 관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독단으로 파룬궁 탄압을 강행했다. 이후 중국인들은 사상 초유의 재난에 시달리게 됐다.

자기 수양과 도덕성을 강조하는 파룬궁은 국가와 국민에게 백 가지 이로움이 있을 뿐 한 가지 해로움도 없었다. 중국 공산당이 제정한 헌법이나 법률에 따라 판단할 때도 파룬궁은 합법이다.

장쩌민은 파룬궁을 탄압하기 위해 정규 행정시스템과 법 제도를 우회하는 비밀 경찰조직 ‘610호 판공실(혹은 610 사무실)’을 설치했다. 나치 독일의 게슈타포와 유사한 조직이었다. 중국 공산당의 사악한 본성과 흉포함을 그대로 이어받은 이 조직은 중국의 인권 및 사법, 도덕 그리고 경제를 철저히 파괴했다.

이 탄압으로 수천만 명의 무고한 중국인, 의로운 신념과 신앙을 품은 사람들이 박해를 받았다. 전국 각지에서 동시에 전개된 탄압으로 십억 명이 훨씬 넘는 일반인들도 끔찍한 사건에 휘말렸다. 수백만 명이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만으로 강제 노역시설, 재교육시설, 정신병원에 감금됐다. 끔찍한 수법으로 고문을 당한 이들도 있었고 수많은 수련자들이 살아있는 상태로 장기를 적출당하는 극악한 범죄의 피해자가 됐다.

피해는 파룬궁 수련자와 주변인들에게만 그치지 않았다. 장쩌민은 파룬궁을 박해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법과 제도와 인권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려는 중국 사회의 앞길을 끊어버리며 중국의 운명을 구렁텅이로 빠지게 했다. 그로 인해 중국 공산당의 미래마저도 철저히 망가지고 말았다.

이 잔학무도하면서도 뚜렷한 근거가 없는 박해를 유지하기 위해 장쩌민은 ‘부패와 음란에 의한 통치’를 실시했다. 그는 인간의 탐욕과 사악한 생각을 조장해 중국 전통문화를 파괴하고, 파렴치하고 부패한 관리를 승진·발탁해 청렴한 공무원들의 사기를 꺾었다.

7명으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던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도 정원을 늘려 자신의 후임자인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 총리의 권력을 약화시켰다. 정상적인 통치자라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박해 정책을 유지하기 위한 계책이었다. 즉, 박해가 시작된 그날부터 파룬궁은 중국 정치의 핵(核)이 됐다.

파룬궁 박해가 너무 오래 지속되고 광범위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면서, 중국 사회는 사회윤리가 곤두박질치고 혼란이 극심해졌다. 그 결과 중국 사회에서 따뜻함과 배려가 사라졌고 인간의 양심은 소멸 위기에 처했다. 오늘날 세계인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중국의 무책임함, 막무가내 행태가 이 시기에 대량으로 굳어졌다.

장쩌민은 박해를 계속하기 위해 ‘610호 판공실’를 통해 “파룬궁 수련자가 고문으로 사망할 경우, 자살로 처리하라”는 내부 명령을 내렸다. 이후 살인을 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지면서 파룬궁 수련자의 사망이 급증했다.

이어 ‘톈안먼 (가짜) 분신사건’으로 대표되는 선전공작이 가동됐다. 중국 중앙(CC)TV를 비롯해 신문 라디오 잡지 등 관영언론을 주축으로 한 비방 보도가 빗발쳤다. 교과서에 파룬궁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내용이 실리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증오를 심어 파룬궁 박해를 방관하거나 심지어 가담하도록 부추겼다.

박해를 계속하기 위해 중국 공산당은 정치 경제 외교 교육의 각 분야에서 파룬궁 박해를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삼도록 명령했다. 그 결과 중국은 세계 각국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장쩌민은 중국 공산당의 사악한 통치 시스템을 이용해 퇴임 후에도 파룬궁 박해가 계속 유지되도록 했다. 이는 2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박해의 영향은 중국에만 머물지 않는다.

장쩌민은 파룬궁 비방을 전 세계에 퍼뜨리고 검은 손길을 각국으로 뻗쳤다. 거대한 시장과 막강한 경제력을 장악한 중국 공산당은 각국 정부와 민간단체, 언론에 파룬궁 수련자의 장기를 살아있는 상태에서 적출하는 잔학한 인권 침해 행위 앞에서 침묵하라고 협박했다. 이는 인류 문명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일이다.

장쩌민은 죽었다. 그렇다고 지은 죄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지난 20년간, 전 세계에서는 ‘장쩌민에 대한 형사고발 및 고소 운동’이 전개돼 왔다. 장쩌민은 18개국에서 기소됐고, 세계 37개국에서 약 400만 명 이상으로부터 반인도·반인류 범죄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중국 공산당은 중국과 중국인에 대해 죄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신(神)에 대해서도 중대한 죄를 지었다.

중국 공산당의 현 최고 지도자인 시진핑은 박해를 주도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장쩌민의 죄악을 짊어질 것이 아니라 박해를 끝내야 한다. 무너질 운명인 중국 공산당을 지키려는 노력은 모두 헛수고가 될 것이다.

파룬궁 박해에 가담한 악인(惡人) 상당수는 이미 그 악행으로 응징을 받았다. 장쩌민의 죽음은 중국 공산당의 붕괴가 가속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박해를 계속하려는 자는 시국을 제대로 인식하고 박해를 멈춰야 하며, 지난 잘못을 되돌리고 보상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중국 사회는 지금 초유의 변혁기를 맞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종말이 고(告)해졌고 곧 하늘에 의해 도태되려 하고 있다.

2004년 11월 에포크타임스가 시리즈 사설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9평 공산당)’을 발표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4억 명 이상의 중국인이 중국 공산당과 산하 조직(공산주의 청년단, 소년선봉대)에서 탈퇴한다고 자발적으로 선언했다.

우리는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즉각 중단하고 구금한 모든 파룬궁 수련자를 석방하며 박해 가담자를 엄정하게 심판할 것을 시진핑에게 촉구한다.

우리는 더욱 많은 중국인이 중국 공산당의 정체를 알아채고 당 조직에서 탈퇴함으로써, 이 거대한 역사적 분기점에서 더 나은 미래를 선택하기를 바라고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