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싱크탱크 설립자가 밝힌 ‘다시는 중국여행 안 가는 이유’

장민순
2021년 05월 18일 오후 12:24 업데이트: 2021년 05월 18일 오후 2:02

독일 매체 타게스 슈피겔은 지난 10일 ‘내가 중국 여행을 가지 않는 이유’란 제목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저자는 독일 싱크탱크 세계공공정책연구소(GPPI) 설립자 겸 소장인 토르스텐 베너(Thorsten Benner)다. 그는 2018년 말까지 중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12월 10일 어떤 사건을 겪은 후 다시는 중국을 가지 않게 됐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외국인에 대한 보호가 전혀 없는 중국

베너 소장은 2018년 12월 베이징에서 개최된 중국, 유럽, 아시아 각 국의 정책제정자들과 연구원들이 모인 회의에 참석했다. 주최 측은 쾨르버 재단(Körber-Stiftung)과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국제부였다. 베너 소장에 따르면 이날 토론은 만족스러웠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을 포함한 여러 해외 고위인사들과 중국 공산당 고위층의 토론은 순조로웠다. 금기시되는 화제도 없었다. 이런 분위기에 맞춰 베너 소장도 신장 위구르에서 벌어지는 중국의 소위 ‘테러 진압’에 대해 소신 발언을 했다. 중국 측 토론자들이 질문을 던지기는 했지만 갈등은 없었다.

그런데 이날 베이징에서는 심상치 않은 사건이 발생했음을 베너 소장은 독일로 귀국한 후에야 알 수 있었다. 캐나다 국적의 전직 외교관 출신 마이클 코브릭과 대북 사업가 마이클 스페이버가 스파이 혐의로 중국 당국에 체포된 것이다.

코브릭은 이 글이 발표된 날까지도 중국에 억류돼 있었다. 그에게는 스파이 혐의가 씌워졌지만, 캐나다가 미국의 인도 요청에 따라 멍완저우(孟晚舟) 화웨이 글로벌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체포한 데 따른 보복 조치라는 게 국제사회의 중론이다.

베너 소장은 “나는 외국 여권은 중국에서 임의적인 구류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수단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며 놀라워했다.

또한 이번 사건으로 외국 연구원들은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의 심기에 거스르는 발언을 하면 ‘협상카드’로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것이라고 했다.

외국에 머무는 외국인까지 대상으로 하는 중국의 국가안전법

중국 공산당이 제정한 국가안전법은 해외까지 적용된다. 외국인이 외국에서의 언행으로 ‘중국의 국가안전을 위협한 혐의’로 기소될 수 있다는 의미다.

베너 소장은 시진핑과 같은 통치자가 중국에서 사적인 이유로 법을 남용한다면 다시는 중국으로 여행을 가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했다. 그는 “나는 자주 글을 쓰고 중국의 몇몇 친구들과 연락하고 있다. 중국은 내게 쉽게 죄명을 씌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중국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중국 방문 과정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위험에 따른 득실을 비교할 이유가 있다. 그러나 중국을 깊게 연구하길 바라는 사람들에게 암흑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오랫동안 비자를 무기로 사용해왔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를 비난하는 이들은 비자 발급이 거부되거나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중국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자아비판’을 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다.

베너 소장은 지난달 22일 중국 정부가 독일 메르카토르중국학연구소(MERICS)와, 아드리안 젠즈(Adrian Zenz), 뵨 예르덴(Björn Jerdén) 등 유럽의 저명한 중국 연구자들에게 가한 제재를 예로 들었다.

그는 이를 학문의 자유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하고 중국은 자신들과는 독립적으로 이뤄지는 중국에 대한 연구를 말살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환구시보는 제재 발표와 관련해 “중공과의 관계가 끊어진다는 것은 메르카토르중국학연구소의 연구 채널이 끊어지고 그 영향력이 큰 타격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환영 논평을 냈다.

유럽의 정치인들과 학자들은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1300명의 연구자들과 30명의 유럽 싱크탱크 책임자들은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중국 정부의 제재 조치를 학문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라며 비판했다.

유럽 의원들과 독일 외교부, 의원들도 메르카토르연구소를 지지하는 발언을 내놨다.

베너 소장은 “하지만 독일 총리와 총리부는 중국의 독일 연구원 제재에 침묵하고 있다”며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베너 소장은 “중국의 제재를 받은 연구소와 연구자들은 독일에는 없어서는 안 될 자원과 마찬가지다. 그들의 우수한 역량은 중국과 관련된 업무에서 반드시 발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경계하고 비난하는 학자와 연구자들일수록 독일은 이들을 중용하고 심지어 중국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회의 석상에도 초대해 발언해야 하게 한다는 게 베너 소장의 생각이다.

독일 언론에 따르면, 독일 트리어대학은 이번 제재 조치에 대한 반발로 학교 내에 설치된 공자학원에 대한 잠정적인 보이콧을 시작했다.

베너 소장은 중국의 이 같은 견제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 각구 중국 연구자들은 공동연대를 형성해야 하며 특히 아시아 국가들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한편, 베너 소장이 재직하고 있는 독일 싱크탱크 GPPI는 중국과의 사업에 관한 비판적 연구보고서인 ‘위험한 비즈니스(Risky Business)’ 발표해, 중국과 갈등의 시기에 세계 각국 연구자들이 연구방식을 새롭게 하고 대화와 합동연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