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대통령 장진호 전투 발언 의식? CCTV 6·25전쟁 드라마 긴급 재방영

최창근
2023년 04월 30일 오전 10:21 업데이트: 2023년 05월 25일 오후 3:38

윤석열 대통령이 방미 중에 6·25전쟁과 장진호 전투에 대해 언급한 것을 두고 중국이 격한 반응을 보인 가운데 중국 국영 방송이 6·25전쟁을 다룬 드라마를 방영해 그 배경이 주목받고 있다. 대통령이 미국 의회 연설에서 미군 등 유엔군이 중국 인민지원군과 싸운 한국전쟁 장진호 전투를 언급한 것을 의식한 반응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은 군사채널인 CCTV-7에서 4월 30일 밤 10시(현지 시간)부터 40부작 드라마 ‘압록강을 건너다(跨過鴨綠江)’ 1·2부를 전격 재방영한다. 드라마는 CCTV가 제작해 2020년 12월부터 방영한 이른바 중국식 애국주의 드라마이다. 마오쩌둥(毛澤東) 전 국가주석의 6·25전쟁 참전 결정, 중국 인민지원군의 압록강 도하, 장진호 전투 등을 모티프로 했다. 당초 CCTV 군사채널은 4월 30일 같은 시간대에 2019년 드라마 ‘위대한 전환’ 1·2부를 방영한다고 공지했으나, 방영 하루 전인 4월 29일 오후 ‘압록강을 건너다’로 변경한다고 공지했다.

드라마는 이른바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라는 중국식 6·25전쟁관(觀)을 투영하고 있다. 드라마에 담긴 “항미원조 전쟁 당시 미국 해군 제7함대가 대만해협에 진입하고 오폭까지 하자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이 분개해 칼을 빼 들었다.” “중국 인민지원군이 파죽지세로 38선을 돌파해 서울을 점령하는 등 마오쩌둥 주석의 영명한 결정으로 중국은 민족의 존엄을 내보였으며 세계사에 새 국면을 열었다.” 등의 서술이 이를 반영한다.

‘압록강을 건너다’는 중국의 6·25전쟁 참전 정당성도 강조하고 있다. 드라마 작가 위페이(餘飛)는 “당시 이 드라마는 항미원조전쟁의 역사적 의미와 미국에 대항하는 중국 인민들의 단결을 강조하는 작품이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2021년 ‘압록강을 건너다’는 동명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환구시보’ 인터넷판 환구망은 “CCTV 군사채널이 앞으로 매일 같은 시각 드라마를 방영할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매체는 ‘압록강을 건너다’를 소개하며 “이 드라마는 방대한 사료를 기초로 항미원조 전쟁의 역사적 장면을 전면적으로 보여준다. 장진호 전투 등 여러 감동적 전투의 장면을 실감나게 되살려내 위대한 항미원조 정신을 진지하게 드러내 보인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전편에 걸쳐 웅변하는 사실은 무기는 많고 기개는 작은 침략자는 반드시 패한다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통제를 받는 CCTV가 자국 관점에서 6·25 참전을 다룬 드라마 재방영을 긴급 편성한 것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장진호 전투 발언’에 대한 대응 차원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미국 해병대 제1사단은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 12만 명의 인해 전술을 돌파하는 기적 같은 성과를 거뒀다. 장진호 전투에서만 미군 4천500명이 전사했고, 6·25 전쟁에서 미군 약 3만 7천 명이 전사했다.”고 구체적인 수치까지 들어 장진호 전투를 언급했다.

중국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은 4월 28일 정례 브리핑에서 “항미원조전쟁의 위대한 승리가 중국과 세계에 중대하고 심원한 의의를 갖고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고 전제한 후 “어떤 나라든, 어떤 군대든 역사 발전의 흐름과 반대편에 서서 힘을 믿고 약자를 괴롭히고, 시대 흐름에 역행하고, 침략을 확장하면 반드시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릴 것이라는 강철 같은 사실을 세상에 알린다.”고 고수위의 언사를 동원해 반발했다.

중국은 6·25전쟁에서 자국이 참전한 1950년 10월부터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까지를 항미원조 전쟁으로 공식 표현한다. 6·25전쟁의 성격도 미국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전쟁으로 규정하고 있다.

6·25전쟁은 이오시프 스탈린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마오쩌둥 당시 중국 국가주석의 승인하에 김일성의 북한이 기습 남침해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와 공산당은 남침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은 그동안 모든 역사책에서 6·25전쟁을 ‘북침’으로 기록해왔다. 더하여 중국 정부와 공산당은 6·25전쟁은 제국주의 침략자(미국)가 중국 인민에게 강요한 전쟁이라면서 침략에 맞선 ‘위대한 정의의 전쟁’이며 ‘승리한 전쟁’이라고 강변해왔다.

실제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7년 8월 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인민해방군 창설 90주년 기념 경축대회 연설에서 “인민군대가 항미원조 전쟁 등을 승리로 이끌어 국위와 군위를 떨쳤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중국의 이런 주장들은 옛 소련 붕괴 이후 각종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됐다. 특히 중국은 승리했다는 주장과 달리 항미원조 전쟁에서 엄청난 인적·물적 피해를 입으며 패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