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방송통신 선제적 개방.. 북한 호응이 변수

이연재
2022년 09월 5일 오후 10:45 업데이트: 2022년 09월 5일 오후 11:27

북한 방송·출판물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 허용에 대한 논의가 최근 정치권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북한방송통신 선제적 개방 그리고 민간차원 대북 방송 주파수 지원 입법적 고찰’ 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5일 국회의원회관 제4간담회실에서 열린 이번 토론회에서 태 의원은 개회사를 통해 “일각에서 북한방송을 국내에 개방한다면 많은 국민들이 북한 당국과 김정은의 선전선동에 넘어가고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것을 우려한다. 특히 북한이 대남 선전용으로 제작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송출할 것이며 이렇게 되면 국민들이 세뇌당할 수 있다고 걱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보좌진이 전화를 못 받고 있다. ‘태영호가 이중간첩이다, 빨갱이다’라는 전화가 많이 왔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대한민국은 세계 10위 경제 강국이고 국민들의 인식 수준이 매우 높다”며 “공산주의의 선전선동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태 의원은 “자유와 반공주의 혼용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시대흐름에 발맞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우리가 먼저 민주주의를 주도하고 자유를 수호하는 모습을 보이며 북한에 체제 대결, 이념 전쟁에서 우리가 확고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일축했다.

아울러 국내 북한방송의 선제적 개방 문제를 논의할 때 반드시 논의해 보아야 할 또 다른 문제가 민간 차원 대북 방송 주파수 지원 문제라고 주장했다.

태 의원은지금까지 민간단체들이 대북 방송을 자체적으로 송출할 수 있게 주파수를 할당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지만 역대 어떤 정부도 이 문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윤석열 정부에서 공론화되어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이광백 DailyNK 대표, 한명섭 법무법인 한미 변호사,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황선혜 통일부 사회문화교류정책 과장이 참석했다.

남북한 방송 개방, 북한 호응은 미지수

윤석열 정부는 ‘120대 국정과제’ 중 94번으로 ‘남북 간 상호 개방과 소통·교류 추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언론·출판 교류, 미디어 콘텐츠 분야 교류 등 다방면의 남북 상호 소통·교류 추진 및 인적 교류 확대’를 주요 국정과제로 삼겠다고 밝혔다.

토론회에서는 북한방송통신 선제적 개방이 북한의 호응을 얻기 어렵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좌)와 이광백 DailyNK 대표(우) | 에포크타임스

김성민 대표는 “북한이 제일 걱정하는 것은 경제적인 문제보다도 외부 정보 유입에 대한 문제”라면서 “체제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정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 드라마를 유통한 사람을 찾아내 죽이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북한은 내부에서 뉴스를 생산하고 외부 뉴스를 차단하는 가운데 지도자 우상화 작업을 통해 체제를 유지한다”며 “남한 정부가 방송을 개방했을 때 북한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토론회에 참석한 이광백 대표는 “북한 방송 개방이 한국 내에 북한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확산하고, 친북 세력을 늘려 사회 혼란과 국론 분열을 가져올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그는 “종북 세력은 현재도 우회 프로그램 등을 이용해 북한 방송과 언론에 접근이 가능하고, 실제로 접근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국내에서 북한 신문, 방송, 출판물 등에 접근을 시도하거나 유통돼 당국으로부터 시정 요구를 받은 건수가 매년 1,000~2,000건 수준이다”라며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서 북한의 컨텐츠가 확산되지 않는 이유는 컨텐츠나 정보의 내용이 시대에 뒤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양한 정보와 콘텐츠가 유통되는 한국 사회에서 실질적으로 유용한 정보가 아닌 이데올로기적 내용으로 채워진 북한 콘텐츠가 다른 콘텐츠들과 경쟁하게 된다면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을 못 받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어 동서독 방송 교류의 경험을 예로 들며 “서독은 분단 이후, 통일이 될 때까지 동독 방송을 금지한 적이 없었다. 동독은 1960년대에 서독 방송을 금지했다가, 1973년 서독 방송을 허용했다. 이 과정에서 동독 방송은 서독 체제에 이렇다 할 위협이 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교류와 개방정책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한국사회의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대북전략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재는 그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북한이 남한방송통신 개방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대표는 “한국이 선제적으로 북한의 방송통신을 개방한다고 해서 북한이 남한 방송통신을 북한 주민들에게 절대 개방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이 호응하지 않는 개방은 북한의 실질적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일방적 개방, 선언적 조치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하지만 남북한 주민들의 동질성 회복을 위해 개방은 분명히 필요하다”면서 “남북한 통신 개방의 대안으로 정부가 대북방송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남북의 실질적인 방송교류를 추진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황선혜 과장은 “북한 방송·출판 허용 문제에 대한 내용을 국정과제로 발표한 이후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 중”이라며 “아직 정부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더 발표할 수 있는 내용은 없지만 이번을 계기로 해당 문제에 대해 꾸준히 의견을 수렴하고 논의를 진전시키겠다”고 밝혔다.

북한 방송 허용은 국민의 권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황선혜 통일부 사회문화교류정책 과장(좌)과 한명섭 법무법인 한미 변호사(우) | 에포크타임스

정부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 7(불법정보의 유통금지 등)’,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 규정 제6조(헌정질서 위반 등), ‘국가보안법 제7조(고무, 찬양 등)’ 등의 법률을 통해 북한 방송의 국내 유입을 제한하고 있다.

한명섭 변호사는 북한 방송·출판물 허용의 문제는 “정부의 시혜가 아닌 국민의 권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 그중에서도 정보접근권이라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 차원에서 정부 정책이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당연히 국민의 기본적 권리로 북한 방송을 볼 수 있고, 국가보안법상 처벌되는 범위 밖의 시청 행위에 대해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면서 “이에 대한 정부의 규제는 기본권 침해인데 지금까지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없어 유지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통일부의 언론·출판·방송 등에 대한 개방 정책은 의미가 적지 않다”며 “북한 정보에 접근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정부가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 방송·출판물에 대한 접근 문제는 지난 1982년 전두환 정부에서 북한에 “쌍방 정규방송 자유 청취”를 제안한 이래 정치권에서 꾸준히 언급되어 온 문제다. 특히 김대중 정부 당시인 1999년, 통일부는 대변인 담화를 통해 북한 위성 TV 방송을 일반 국민이 시청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통신사·방송사가 북한 위성 TV 방송을 직접 수신하고 일반 국민도 제한 없이 시청할 수 있게 됐지만, 반국가 투쟁 목적을 위해 시청할 경우 국가보안법상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