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학술기관 고위 전문가, 12월에만 19명 ‘질병’ 사망

앤 장
2023년 01월 4일 오후 4:33 업데이트: 2023년 01월 4일 오후 5:30

중국 최고 학술원으로 꼽히는 중국과학원과 중국공정원 소속 전문가 19명이 병명이 알려지지 않은 질병으로 지난달 한꺼번에 사망했다. 지난 몇 년 동안의 평균 사망자 수보다 6배나 많은 수치다.

중국이 발표한 공식 보고서에는 사망 원인에 대한 언급이 제대로 나와있지 않은데, 이는 코로나19로 인해 사망한 사실을 은폐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최근 중국 관영 매체가 발표한 부고 기사에 따르면, 12월 15일부터 26일까지 12일 동안 중국공정원 회원 13명이 병으로 사망했다.

중국공정원(CAE) 사망자 명단은 ▲광통신 전문가 자오지센(趙梓森·91) ▲환경공학 및 환경수질 전문가 탕홍샤오(湯鴻霄·91) ▲희토류 금속 제련 및 분리 전문가 장궈청(張國成·91) ▲레이저 기술 전문가 자오이쥔(趙伊君·92) ▲무기 비금속 소재 전문가 구쩐안(顧真安·86) ▲토목공학 및 구조역학 전문가 룽위추(龍馭球·96) ▲생태학 및 산림 전문가 리원화(90) ▲야생동물 과학자 마젠장(86) ▲소아외과 전문의 장진제(張金哲·102) ▲임펠러 기계 전문가 왕중치(王仲奇·90) ▲건축가 겸 칭화대학교 교수 관자오예(關肇鄴·93) ▲항공우주 제조공학 용접 전문가 관챠오(關橋·87) ▲석유공학 전문가 리칭중(李慶忠·92) 등이다.

12월에 사망한 중국과학원 회원은 총 6명이었다. ▲전기 시스템 자동제어 및 역학 전문가 겸 칭화대학교 교수 루창(盧強·86) ▲생화학 및 분자생물학 전문가 장요우샹(張友尚·97) ▲전 상하이 약학연구소장 장화량(蔣華良·57) ▲고온가스 동력학자 우청캉(吳承康, 93) ▲의학자 통탄쥔(童坦君·88) ▲물리학자 겸 칭화대학교 교수 황커쥐(黃克智·95) 등이다.

사망자는 대부분 중국 공산당 당원이었다. 또 이 중 일부는 중국민주동맹이나 구삼학사 같은 소수 정당 출신으로 중국 공산당을 명시적으로 지지하고 공산당 지도부를 인정해 존재감을 인정받은 전력이 있었다.

이와 관련,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영국의 보건정보 분석기업 에어피니티(Airfinity)는 중국에서 매일 약 1만1000명이 코로나19로 사망하고 있으며, 12월 한 달 동안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총 11만 명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중국과학원 장야핑 부원장이 한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중국 달 탐사선 창어5호가 수집한 샘플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2021.1.18 | Greg Baker/AFP via Getty Images/연합뉴스

학술인 선발에 도입된 정치적 요인

2022년 한 해 동안 사망한 중국과학원·중국공정원 회원은 최소 53명이 넘는다.

중국 학술원의 양대 기둥으로 꼽히는 중국과학원과 중국공정원은 중국 공산당에 충성하는 과학자와 전문가를 육성하는 기관으로, 이들 학술원에 한번 소속되면 평생회원으로서의 특권을 누릴 수 있다.

학술인 선발 제도에는 정치적 요인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 발행되는 황허 잡지의 셰융 부편집장은 지난해 국제학술지 ‘현대중국연구(Modern China Study)’를 통해 중국 공산당 통치하의 학자 제도와 중화민국 통치하의 학자 제도 차이를 논하는 기사를 기고했다.

중국 공산당이 집권하기 전인 1948년, 중화민국이 오늘날 국립학술원에 해당하는 중앙연구원 회원을 선발하는 기준은 학문적 성취라는 단 하나의 원칙에 기초했다.

주요 대학, 연구기관, 전문 학회 및 해당 학계에서 존경받는 유명 인사들이 학술원 회원을 지명했다. 후보자들 모두 당시 일류로 꼽히는 학자들이었다. 심지어 친공산주의였던 궈모뤄(郭沫若)와 마인추(馬寅初)도 회원으로 선출됐다.

중국 공산당이 집권하면서 이후 1955년 중국과학원의 학술인 선발 기준에는 정치적 고려 사항이 포함됐다. 사회과학 분야 학자의 경우 후보자들은 사회주의와 공산당을 지지해야 했다.

일례로 당대 저명한 생물학자이자 중화민국 통치하에서 중앙연구원 회원이었던 후셴푸는 중국 공산당 당국이 “학문적 견해가 반소련적이다”는 이유로 중국과학원 회원 명단에서 제외됐다.

그 뒤로 후셴푸는 문화대혁명 기간 내내 육체적, 정신적으로 핍박을 당했으며 1968년 약 3평짜리 방에서 75세의 나이로 쓸쓸히 숨을 거뒀다.

후셴푸처럼 다른 많은 학자가 문화대혁명 시기에 반동 인물로 낙인찍혀 심한 박해를 받았으며, 죽음에 이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학자와 전문가가 중국 공산당의 숙청을 피하지 못했다. 대약진 운동과 반우파 투쟁 이후 회원 11명이 우파로 분류돼 학계에서 직위를 박탈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