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파벌정치 휘말린 해군장교 “러 항공기술 탈취하고도 철창행”

2019년 03월 19일 오후 11:29 업데이트: 2023년 01월 3일 오전 9:35

1997년 5월 중순 어느 날 저녁, 러시아산 헬기가 라오스와 중국 국경지대를 저공 비행하고 있었다. 당시 중국 해군 사령부 중령이던 37세 야오청(姚誠)은 조종사 옆에 앉아 눈 아래 펼쳐진 풍경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창밖으로 무성한 열대림이 짙푸르게 뒤덮여 있었다. 석양이 나무 우듬지를 환히 밝혔다. 숲 속 깊이 자리 잡은 왕궁은 매혹적인 빛을 발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은 태어나 처음이었고 앞으로도 볼 성싶지 않았다.

러시아 카모프사의 Ka-28 헬기는 당시 세계 최고의 대잠수함 헬기로, 야오청은 라오스에서 Ka-28 한 대를 막 손에 넣은 참이었다. 중국 해군은 리버스엔지니어링을 통해 이 헬기 기술을 복제하고자 했다.

야오청은 기술 복제를 통해 생산한 헬기가 중국 미사일 구축함을 따라 나란히 비행할 훗날을 생각하며 전율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헬기 입수라는 일급 기밀 임무를 달성하고도 중국 정부로부터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당시 중국 공산당 총서기이자 국가 주석이던 장쩌민은 오히려 야오청을 체포하도록 명령했다. 1998년, 야오청은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임무

본명이 탄춘셩인 야오청은 현재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다. 중문 대기원시보와 심층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중국 정권을 위해 어떻게 최첨단 군사기술을 입수했고, 왜 처벌받았는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1993년, 중국 해군은 미사일 구축함 두 대와 러시아 카모프사 헬기 Ka-28 두 대를 사들이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려고 ‘933 사무실’을 설립했다. 야오청은 바로 이 사무실에서 근무했다.

그는 “이 ‘카모프-28’ 헬기는 세계 유일의 최첨단 헬기였다. 러시아가 부른 가격은 650만 달러(약 73억 원)였다”고 했다.

이 러시아산 헬기는 당시 중국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급 기술이 집약된 최첨단 헬기였다.

카모프사 Ka-28은 크기는 조금 더 작았으나, 더욱 강력했다. 당시 잠수함을 공격하려면 보통 두 대의 헬기가 필요했는데, 한 대는 잠수함 수색에 필요한 음파 탐지기와 자력 탐사기를 설치했고, 다른 한 대는 공격 시 발사할 어뢰를 실었다. 매우 비효율적인 시스템이었다. 반면 카모프사 Ka-28은 잠수함 수색과 공격이 한 번에 가능한 헬기였다.

따라서 중국 해군은 러시아로부터 카모프사 Ka-28을 구매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2년간의 협상은 실패로 돌아갔다. 1995년, 타이완은 최초의 민주적 선거를 치르고 리덩후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러시아는 중국 당국이 단독 수장을 선출한 타이완의 행보를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고, 훗날 있을지 모를 침공을 위해서 군사력을 증강하리란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러시아는 이를 기회로 삼아 Ka-28 헬기 가격을 1350만 달러(한화 153억 원)로 인상했다.

당시 중국 해군과 공기업 하얼빈항공기제조총공사(現 하얼빈항공기공업집단유한공사)는 잘 알려진 ‘기술 탈취’ 전략으로 헬기 기술을 얻고자 했다. 중국군 소속으로 일하며 직접 목격한 야오청은 중국의 모든 국방 무기 기술은 다른 나라 기술을 복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야오청에게 Ka-28을 탈취하라는 임무가 떨어졌다. 1982년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공정대학을 졸업한 야오청은 해군 공군 사령부에 배속돼 고속 승진했다. 그는 해군사령관 스윤성 당시 해군 사령관의 총애를 받기도 했다.

야오청은 “부과된 임무를 위해 해군 측에서는 내게 새로운 신분을 부여했다”고 전했다. 그는 하얼빈항공기제조총공사의 헬기부 수석엔지니어라는 신분으로 하얼빈에 특파됐다. 그는 러시아에서 스파이로 활동하던 국가안전부 소속 특수요원과 공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라오스로!

중국 국가안전부는 소련 붕괴 이후 카모프사 Ka-28 몇 대가 아시아에 남게 됐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두 대가 라오스에 있었기 때문에 야오청은 자신의 임무 파트너와 함께 라오스로 향했다. 하지만 라오스에 남아 있던 헬기는 이미 심하게 파손된 상태였다. 야오청 일행은 좀 더 멀쩡한 헬기가 필요했다.

국가안전부는 라오스 내 서열 3위로 볼 수 있는 라오스 국회의장의 딸이 상하이 외국어대학에 재학 중이라는 정보를 야오청 일행에게 전했다. 야오청 일행은 국회의장의 딸에게 접근하려고 1997년 1월 대학교 방학 기간에 쿤밍공항에서 기다렸다.

공항에서 의장 딸이 여행 신고서를 작성할 펜이 없는 것을 목격한 야오청 일행은 곧 그녀에게 다가가 펜을 건넸다. 비행기에 탑승해서는 야오청이 의장 딸 옆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을 사업차 라오스를 방문하는 ‘부유한 중국 사업가’로 소개했다. 의장 딸은 번역 업무를 도와줄 수 있냐는 이들의 요청을 처음에는 고사했다. 하지만 라오스 공무원 월급과 맞먹는 수준인 100달러(약 11만 원)를 주겠노라 하자 결국 그들의 요청에 응했다.

야오청은 그녀의 도움을 받아 라오스 국방부, 공군, 국무원 등의 핵심 기관을 방문했다. 그는 “30만 달러(약 3억 원)로 매일매일 먹고, 마시고, 춤추며 라오스 공무원들을 접대했다”고 했다.

이들은 마침내 라오스 군과 가격 협상을 해 카모프 Ka-28을 150만 달러(약 17억 원)에 구매하기로 했다. 라오스 관계 당국 입장에서는 돈을 받고 구모델을 처분하는 것이기에 손해 보지 않는 거래였다.

그 후, 파벌 정치 때문에 처벌받다

야오청은 하얼빈 항공기제조총공사 소속 조종사 4명을 라오스로 불러들여 일주일 내로 헬기 비행법을 숙지토록 했다. 이들 조종사는 헬기를 타고 중국-라오스 국경지대를 비행하며 중국으로 몰래 넘어갈 준비를 했다.

그는 “이 임무는 일급 기밀이었다. 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정상적인 통관 수속을 밟지 않았을뿐더러 중국 공항에 대한 항로 예보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저공비행으로 레이더 감지를 피해 중국 서남지역 윈난성의 징훙 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들을 적군으로 오해한 지역 무장 경찰이 이들 주위를 에워쌌다. 이러한 항공기를 본 일이 없던 국경 경찰은 곧장 상부에 보고했다.

야오청은 자신이 중국 정부 소속이라는 사실 확인 차원에서 지역 군구 담당자에게 전화번호 하나를 넘겼다. 이 번호는 최고 군사기관인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자 해군장비 인증소 소장인 류화칭의 차남 류주밍의 직통 전화번호였다. 류주밍이 야오청의 임무가 해군 프로젝트임을 확인해주자 경찰은 야오청 일행을 풀어주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날 중앙군사위원회에 나와 근무한 이는 류화칭의 적수 장완녠이었다.

당시 중앙군사위원회의 부주석은 류화칭, 장완녠, 장정, 그리고 치하오톈까지 4명이었다. 류화칭을 끌어내리고 싶었던 장완녠은 우연히 해군 프로젝트를 엿듣게 됐다.

야오청은 “장완녠 부주석이 ‘누가 시켰는가? 이건 아주 큰 해군 프로젝트다. 어째서 중앙군사위원회에 보고하지 않았는가?’라고 캐물었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장완녠은 이 사건을 당시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자 공산당 총서기였던 장쩌민에게 즉각 보고해 류화칭이 이 프로젝트를 조직했다고 고발했다.

당시 해군의 그 누구도 항공기 탈취를 인정할 수 없었다. 류화칭과 그의 아들은 모두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 결국 그들은 야오청이 단독으로 임무를 수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시기 러시아 정보부도 중국이 라오스로부터 카모프사 Ka-28을 낮은 가격으로 구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격노한 러시아는 중-러 무기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위협했고,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큰 난관에 부딪쳤다. 당시 나토의 대(對)중국 무기 금수 조치로 인해 중국 정권이 무기를 구매할 수 있는 경로는 러시아가 유일했다. 러시아가 중국에 무기를 팔지 않으면 중국은 어떻게 되겠는가? 이에 류화칭은 러시아를 찾아가 카모프사 Ka-28 사건은 모두 한낱 해군 장교가 벌인 해프닝일 뿐이라며 러시아 관계자들을 설득하기에 이르렀다.

공산당 총서기 장쩌민은 “이렇게 큰 사안은 철저히 보고돼야 한다”며 직접 지시를 내렸는데, 이 말은 곧 류화칭이 주장한 야오청 ‘단독 범죄’를 장쩌민이 받아들인 것이다. 장쩌민의 지시가 하달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야오청은 체포됐다. 그는 공산당과 국가를 위해 헬기 탈취 임무를 수행했으나, 결국 정권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야오청은 “라오스에 150만 달러(약 17억 원)를 준 것이 누구인가? 나에게 가짜 신분과 문서를 준 것이 누구인가?”라고 반문했다.

1997년 8월, 야오청은 베이징 공항 인근의 광잉지구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됐다. 그는 9개월 후, 안후이성 허페이 교도소로 이송됐다. 그는 2003년 장쩌민이 물러난 뒤, 형기 만료 전 석방됐다. 이 시기 카모프사 Ka-28 헬기 기술은 이미 복제가 완료돼 중국군이 사용하고 있었다.

야오청이 임무를 수행한 지 5년이 지나 중국은 러시아에서 헬기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야오청은 5년 넘게 수감 생활을 했다. 당에 충성했지만, 처벌받았고 미래는 산산조각 났다.

그는 “군인으로 살아온 지 수십 년 만에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나의 명성까지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수감된 나를 보고 군 동료들이 멸시의 눈길을 보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