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정부, 홍콩 시위대 맹비난…캐리 람 ‘녹음파일’과 왜 달랐나

차이나뉴스팀
2019년 09월 6일 오후 4:33 업데이트: 2019년 09월 7일 오전 10:29

지난 4일 캐리 람 장관은 송환법 공식 철회를 발표했다. 앞서 2일 로이터 통신이 비공개 자리에서 녹음된 음성파일을 공개한 지 이틀만이다.

녹음 파일에서 람 장관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최고 통치자로서 용서받기 힘든 혼란을 일으켰다”라며 “만약 기회가 있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깊은 사과와 함께 (장관직을) 그만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송환법은) 중앙 정부가 지시하고 강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중앙 정부는 (홍콩에) 결코 인민해방군을 투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바로 다음 날인 3일 람 장관은 녹음파일 속 목소리가 자신임을 인정하면서 “사퇴 의사는 없다”고 말을 뒤집었다.

홍콩 01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람 장관은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녹음파일 유출에 유감을 나타내며 “지난 6월부터 지금까지 중앙정부에 사임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고 말했다.

3일 전날 유출된 녹음파일에 관해 해명기자회견을 하는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 EPA/JEROME FAVRE=연합뉴스

이날 오후 중국 정부 측에서도 홍콩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그러나 홍콩 시위대에 대해 한발 물러선 듯한 람 장관의 어조와는 사뭇 다른 강경 발언이 쏟아졌다.

국무원 산하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베이징 소재) 양광(楊光) 대변인은 3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홍콩 시위대의 폭력성을 지적했다.

양 대변인은 시위대 5대 요구사항 중 하나인 ‘행정장관 직선제’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긴급 상황에서는 홍콩에 중국 국내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폭탄 발언했다.

송환법 반대 시위는 홍콩인들이 중국의 법제도 아래에서의 통제를 원치 않아서 촉발된 것인데, 유사시 홍콩에 중국 국내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양 대변인의 발언은 홍콩 시민들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3일 오후 중국 베이징 국무원 신문판공실에서 열린 홍콩 문제 관련 기자회견에서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 양광(楊光) 대변인(가운데)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9.3 | 연합뉴스

입법회 야권 의원 5명은 같은 날 기자회견을 열고 홍콩·마카오 판공실의 발표를 즉각 반박했다.

민주파 클라우디아 모 의원은 “홍콩·마카오판공실의 발언은 홍콩인을 정치적으로 위협한 것이고, 중공군의 홍콩 파병 배제 내용이 전혀 없다”며 홍콩인의 요구사항을 무시한 것 이라고 지적했다.

여론이 악화일로로 치단는 가운데 5일 캐리 람 장관의 송환법 철회 공식 선언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시위대에서는 수용 거부 방침을 밝혔지만, 끓어오르던 홍콩 여론을 일정 부분 식히는 효과를 냈다.

불과 나흘 사이, 홍콩 사태는 롤러코스터 타듯 격변했다. 이러한 사태 급변의 시발점으로 작동한 캐리 람 장관의 녹음파일 유출은 어떻게 이뤄진 것일까?

홍콩의 영화제작자 겸 정치평론가 스티븐 슈 | 자료사진

홍콩의 시사평론가 스티븐 슈(蕭若元·70)는 에포크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녹음파일 유출에 대해 의도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스티븐 슈는 “녹음파일 유출 경로는 둘 중 하나다. 캐리 람 스스로 녹음해 유출했든지, 그 자리에 있던 누군가가 몰래 녹음해 유출했든지다. 후자일 가능성은 작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녹음파일을 들어보니) 몰래 녹음한 것 같지 않을 정도로 음질이 좋았다. 캐리 람이 직접 유출했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그랬다면 이는 시진핑의 뜻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시진핑 주석이 캐리 람을 통해 홍콩인들에게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전했다는 것이다.

메시지 내용에 대해서 “시진핑 자신의 결정을 알리면서 또 군 투입은 없을 테니 홍콩인들에게 안심하라는 것”이라고 스티븐 슈는 풀이했다.

이어 “국제사회에 대해서는 군 투입에 대한 우려를 종식하고, 홍콩사태가 강경파들의 입김에서 벗어났음을 알리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스티븐 슈의 주장은 객관적 근거가 없는 정황적 추정이라는 한계를 지니지만, 홍콩 사태에 관한 시사점을 남긴다.

홍콩 사태를 둘러싸고 공산당 지도부 내부에서 계파 간 이해득실에 따른 주도권 다툼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은 7인으로 구성됐으며, 각 상무위원은 당직과 국가직을 겸직하며 권력을 나누어 가진다.

서열 1위 시진핑은 당 총서기(당직) 겸 군사위 주석(국가직)으로 실권인 군권을 장악하고 있지만 모든 권력을 전부 쥐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진핑 집권2기 체제를 구성하는 상무위원 7인. (윗줄 왼쪽부터) 시진핑 주석, 리커창 총리, (아랫줄 왼쪽부터) 리잔수 전인대 상무위원장 , 왕양 정협 주석, 왕후닝 중앙서기처 서기, 자오러지 중기위 서기, 한정 국무원 부총리 | 연합뉴스

홍콩에 대한 모든 정책은 서열 7위인 한정(韓正) 상무위원이 총괄한다. 그의 공식 직함(국가직)은 국무원 상무부총리다.

불붙은 홍콩 여론에 기름 끼얹은 효과를 낸 양광 대변인은 홍콩·마카오 판공실 소속이다. 이곳은 한정 상무위원이 장악하고 있다.

상하이 출신인 한정 상무위원은 계파 성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전체적으로는 상하이방을 이끄는 장쩌민의 계파로 분류된다.

양광 대변인의 홍콩 강경 발언과 캐리 람의 송환법 철회가 엇박자 행보처럼 보이는 것은 두 사람이 각각 경쟁 파벌의 영향력을 받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