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영사관, 영국서 홍콩 시위대 구타…총영사 목격 주장

한동훈
2022년 10월 18일 오후 12:15 업데이트: 2022년 10월 18일 오후 1:01

中 영사관 직원들, 시위대 끌고 들어가 폭행
영국 여야 격분 “중국대사 불러서 항의” 촉구
“총영사가 직접 현수막 찢어” 목격담까지

중국 영사관 직원들이 시위대를 영사관 안으로 끌고 가 구타한 사건이 영국에서 발생해 현지 경찰이 조사에 착수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폭행 현장에서 직접 현수막을 찢고 시위대가 구타당하는 것을 지켜본 신원미상의 한 남성이 총영사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영국 그레이터맨체스터 경찰은 전날(16일) 중국 영사관 직원들이 홍콩 민주화 시위대를 폭행한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고 있다고 17일(현지시간) 밝혔다.

구타를 당한 남성은 영국으로 이주한 홍콩 시민 출신이었으며, 폭행은 현지 경찰이 영사관 안으로 진입해 남성을 구출한 뒤에야 중단됐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후 영국 북부 맨체스터의 중국 영사관 앞에서는 30~40명이 모여 중국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고, 이날 오후 4시 직전 몇몇 남성이 영사관 건물에서 나와 시위 참가자 남성 1명을 영사관 안으로 끌고 들어가 폭행했다.

경찰은 이 남성이 질서 유지를 위해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에 의해 구조돼 17일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으며, 폭행 용의자는 아직 체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영국 BBC는 시위대가 홍콩 시민 출신으로 영국에 이주한 사람들이었으며, 16일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개막일에 맞춰 공산당의 홍콩 탄압에 항의하고 시진핑 퇴진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BBC 웹사이트에 공개된 영상에는 영사관 직원으로 보이는 마스크를 쓴 남성들이 시위대의 팻말을 찢고 빼앗은 뒤 영사관 앞에서 거칠게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이 담겼다. 이 남성들은 몸싸움 도중 땅에 쓰러진 남성을 구타하기도 했다.

시위대는 영사관 문 바로 옆에서 ‘천멸중공(天滅中共)’이라고 적힌 현수막 등을 펼쳐 들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늘이 중국 공산당을 멸한다’는 뜻의 이 문구는 홍콩 시위 때도 등장한 바 있다.

‘밥’으로 알려진 집단구타 피해자 남성은 “중국 본토인들이 영사관에서 나와 포스터를 훼손했다”며 “이를 제지하자 그들은 나를 안으로 끌고 들어가 폭행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행위가 영국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건 후 시위를 주최한 홍콩 민주화 단체인 ‘홍콩 원주민 방위군(HKIDF)’은 성명을 내고 “활동가의 연설이 시작되고 채 2분도 지나지 않아 중국 영사관 직원들이 시위대가 들고 있던 대형 포스터를 빼앗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 포스터는 왕관을 쓴 시진핑이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벌거벗은 임금님’ 우화에 빗대 시진핑을 풍자하는 내용이었다. 포스터 속 시진핑은 속옷 차림이었고 손에는 피 묻은 대만, 홍콩, 우크라이나 지도가 들려 있었다.

사건 후 영국 여야는 일제히 중국 대사를 불러 항의해야 한다고 영국 외교부에 촉구했다.

야당인 노동당 소속 데이비드 래미 의원은 중국 대사를 불러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고, 보수당 소속 외교위원회 의장 앨리샤 컨스 의원은 폭행에 가담한 중국 영사관 관계자를 추방하거나 법적 책임을 묻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영국 총리실은 이번 사건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고 논평했으며, 경찰이 해당 지역에 대한 경찰 순찰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 왕원빈 대변인은 17일 이번 사건에 대해 “영국 주재 대사관과 영사관은 주재국의 법률을 일관되게 준수해왔다”고 말했다.

한편, 사건 후 소셜미디어에는 시위 현장에 정쉬위안(鄭曦原) 총영사가 직접 나와 현수막을 훼손하는 등 시위대 탄압에 직접 개입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시위대가 촬영해 공개한 영상을 보면, 현장에는 모자와 마스크, 스카프를 착용한 코트 차림의 백발 남성이 ‘천멸중공’ 현수막을 찢거나 발로 찼다. 또한 이 남성은 밥이 영사관 안으로 끌려들어간 후에는 그가 구타당하는 것을 영사관 안쪽에서 지켜보기도 했다.

영상에는 남성의 뒷모습과 옆모습만 보였고 마스크에 얼굴이 가려졌으나, 그가 착용하고 있던 스카프는 정쉬안 총영사가 2019년 행사에 참석했을 때 착용한 것과 유사했다(중국영사관 게시물 저장본 링크).

시위대가 촬영해 공개한 영상에서 정쉬위안 중국 총영사로 추정된 인물. | 영상 캡처

영국의 홍콩 인권감시단체인 ‘홍콩워치’의 루크 드 풀포드 역시 해당 인물을 정쉬위안 총영사로 추정했다.

이와 관련 데이비드 알튼 상원의원은 “그 인물이 총영사인지 여부를 명확히 해야 한다”며 영국 주재 중국대사 정쩌광(鄭澤光)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인권·자선 활동으로 유명한 알튼 의원은 낙태와 안락사 등을 반대해왔으며, 2019~2020년 홍콩 민주화 운동을 지지해 지난해 중국 공산당 정권의 제재 대상 명단에 오른 영국 상원의원 2명 중 한 명이다.

한편, 영국 주재 중국 영사관은 이번 사건에 관한 에포크타임스의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