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안하무인 외교가 부른 참사, 체코 새 정부 “대만 관계강화”

김윤호
2022년 01월 4일 오후 6:36 업데이트: 2022년 06월 3일 오후 3:50

지난해 12월 출범한 동유럽 국가 체코의 새 정부가 공산주의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는 과감한 행보를 보이며 ‘가치 외교’를 내세우고 있다. 민주주의 동맹과 관계를 강화하고,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재검토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친중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온 밀로시 제만(78) 대통령은 건강상의 이유로 대통령직 수행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그는 지난해 11월 새 총리 임명식 때도 중공 바이러스 감염에 따른 코로나19 발병으로 투명 아크릴 상자 안에서 휠체어를 탄 채 참석했다.

지난해 10월 체코 총선에서 중도우파연합이 승리하면서 12월 17일 페트르 피알라 신임 총리가 이끄는 새 정부가 출범했다. 보수정당인 시민민주당, 중도좌파 해적당 등 5개 정당이 연합한 중도우파연합 정부는 좌파를 자처했던 제만 대통령과는 차별화된 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된다.

눈에 띄는 것은 인권과 외교를 분리하지 않는 외교정책과 대만, 일본 등 민주주의 국가와 협력 강화다.

현지매체 체코 통신사(CTK) 보도에 따르면, 얀 리파프스키 신임 외무장관은 작년 12월 18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체코의 명성과 지위를 회복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라며 외교에 인권을 포함하고 ‘마그니츠키법’ 입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이 28일 아크릴판으로 사방을 가린 보호막 속에서 페트르 피알라(왼쪽) 신임 총리 임명식에 참석하고 있다. | 프라하= EPA/연합

이 법은 인권탄압과 부패행위를 제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리파프스키 장관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강경한 태도도 시사했다. 그는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를 재검토할 것이며,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일원으로서 중러 관계 재검토는 체코의 안보와 번영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만에 우호적인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리파프스키 장관은 취임 전이었던 작년 10월 말 체코를 방문한 대만 우자오셰 외교부 장관과 만찬을 함께하며 “대만은 체코의 중요한 경제 파트너이며, 중국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밝혔다.

모두가 공산주의 중국이 내미는 경제적 이익을 거부하지 못하고 대만에 등을 돌리는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에 기반한 외교를 펼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힌 것이다.

리파프스키 장관은 작년 12월 중국 정부가 리투아니아와의 외교 관계를 일방적으로 격하한 것에 대해 비엔나 협약을 위반했다고 비난했다.

얀 리파프스키 체코 신임 외무장관 | Chip Somodevilla/Getty Images

동유럽 발트 3국의 하나이자 인구 270만의 약소국 리투아니아는 수도 빌뉴스에 ‘대만’ 대표처 개설을 허용했다. 외교공관을 설립하려면 외교 관계를 수립해야 한다. 따라서 대만은 지금까지 비수교국에 ‘타이베이경제문화사무처’ 명의로 대표처만 설립해왔다.

그런데 리투아니아가 유럽 국가로서는 최초로 ‘대만’이라는 사실상의 국호로 직접 대표처를 설립하도록 한 것이다.

중국은 약소국인 리투아니아의 ‘저항’을 가볍게 보고 압력을 가했지만, 이는 오히려 화근이 됐다. 다른 유럽국가들이 중국의 거만한 외교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며 같은 나토의 일원인 리투아니아를 편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중국에 대한 반감은 곧 유럽연합(EU) 전체로 퍼졌고, 여기에 새로 출범한 체코 정부도 동참하고 있다.

파벨 피셔 체코 상원 외교·안보·국방위원장은 “최근 리투아니아와 중국의 외교 변화를 살펴보면, 리투아니아에 대한 중국의 따돌림은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행동이며, 체코가 이런 역사적인 순간에 나서길 희망한다. 이는 리투아니아뿐만 아니라 체코에도 영향을 미친다”라고 밝혔다.

대만 외교부, 체코와 관계에 긍정적 전망

리투아니아에 설치된 대만 대표처 현판. 리투아니아 외교관이 자신의 휴대기기로 직접 촬영해 공개했다. 밝은 얼굴이 대만에 대한 리투아니아의 지지를 나타내고 있다. | 대만 외교부

지난달 23일 우자오셰 장관은 대만이 리투아니아, 체코와 국교를 맺을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현재, 국교를 맺는 것은 중점사항이 아니며, 진행 중인 외교 항목은 대외적으로 공개하기 곤란하다”고 말을 아꼈다.

리투아니아를 비롯해 대만에 호의적인 국가들이 중국의 경제적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국교 수교 등은 공개적으로 논의하기 쉽지 않은 주제다.

다만, 우자오셰 장관은 “새로 출범한 체코 정부는 대만에 매우 우호적이며, 가치외교를 내세워 민주 국가와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체코 정부는 인권을 중시하고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를 재검토할 것이다. 따라서 체코와의 관계는 좋아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우자오셰 장관은 작년 10월 체코의 요청에 응해 체코 상원을 방문했으며, 밀로시 비스트르칠(Milos Vystrcil) 상원의장으로부터 대만-체코 양국관계 개선에 공로한 기여로 ‘국제귀빈’이라는 휘장을 받은 바 있다.

비스트르칠 의장은 이후 인터뷰에서 “대만과 대만의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며, 대만-체코 관계를 강화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대만 외교부는 2021년 외교성과에 대해 “튼실한 외교를 추진해 대만을 지지하는 국제사회의 역량을 강화했으며, 대만의 국제적 이미지와 가시성을 효율적으로 높였다. 2022년 글로벌 및 지역적 안보는 여전히 위협이 존재할 것이며, 특히 중국이 권위주의를 견지하여 전랑식(戰狼·늑대전사) 외교를 실시하고 침략적으로 확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또한, 대만의 국제 참여를 무력화하는 중국의 압박은 강해질 것이며, 수단 또한 매우 비열해질 것이다”라고 밝혔다.

* 이 기사는 중위안 기자가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