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반도체 산업 위기감 고조…시진핑 “선진국에 목졸린다”

한동훈
2022년 07월 11일 오전 10:37 업데이트: 2022년 07월 11일 오전 11:49

미국 상무부, ‘러시아 지원 혐의’ 중국 5개사 제재 추가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중국 반도체 분야의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다.

중국 5개사가 러시아를 지원한 혐의로 미국의 제재를 받으면서 이미 좁아진 반도체 핵심기술 공급 채널이 더 좁혀졌기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29일 후베이성 우한시 시찰 기간, 중국 최대 레이저 장비 제조업체인 화궁(華工)레이저(HG Tech)를 찾아 과학기술 자립을 강조했다.

시 주석은 중국이 첨단산업 핵심 분야에서 “선진국에 의해 목이 졸리고 있다”며 위기감을 나타냈다. 그는 “우리 과학과 기술의 생명줄은 우리 손에 단단히 쥐고 있어야 한다”며 “중요한 기술 분야에서 돌파하는 것은 매우 긴급한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과학기술 자립”을 강조하고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미국 정부는 중국 기업 5곳을 미국 기술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블랙리스트에 등록했다.

미 상무부는 지난 5일 코넥(柯奈柯特·Connec)전자, 킹파이(金派·King-Pai), 시노(信诺·Sinno), 위닉(Winninc·维科), 월드제타(世捷达·World Jetta) 등 중국 기업 5곳을 러시아 군사·방위산업기지 지원 등의 이유로 블랙리스트인 ‘엔티티 리스트(Entity List)’에 추가했다.

케이블 제조사인 코넥과 홍콩의 물류업체 월드 제타를 제외한 나머지 3개사는 반도체나 관련 부품 제조업체다.

이날 지나 레이몬도 미 상무장관은 중국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기업 SMIC(中芯国际·중신궈지)가 러시아에 반도체를 공급하다가 적발되면 “파괴적인 결과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레이몬도 장관은 “우리는 중국을 비롯해 세계 거의 모든 반도체 제조시스템을 언제든 멈추게 할 수 있다”며 대부분 미국산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3월에도 레이몬도 장관은 SMIC를 콕 집어 “대러시아 수출 통제를 어긴 중국 기업은 문을 닫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SMIC는 이미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다. 미 상무부는 지난 2020년 12월 SMIC와 계열사를 엔티티 리스트에 올려 미국산 장비와 소프트웨어 수출을 제한했다. 다만, 10나노 이하 고품질 제품 생산용으로만 한정했다.

이로 인해 SMIC는 최첨단 반도체 연구개발 분야에 적잖은 타격을 받게 됐지만, 10나노 이상 공정에서는 별 지장을 받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 상무부가 제재를 확대할 경우, SMIC의 경영환경 악화는 물론 시진핑의 ‘반도체 굴기도 상당한 좌절을 겪을 수 있어 SMIC는 이후 몸을 사리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심각한 위협에 직면한 중국의 반도체 산업

시 주석은 우한 시찰 기간 과학기술 자립을 강조하면서 “반도체 연구개발(R&D)은 중국의 거국체제(举国体制)를 최대한 활용해야 개발 속도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거국체제는 최근 몇 년간 중국 공산당의 선전에 자주 등장한 단어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이점을 강조할 때 사용된다. 국가 전체의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대처하는 시스템을 가리킨다. 영어로는 ‘whole nation system’으로 번역된다.

서방에서는 기업의 자율적 선택과 시장 경쟁을 통해 자원이나 역량이 배분된다. 하지만, 공산당 정권하에서는 자원을 정권이 임의로 배분한다. 중국 공산당은 거국체제를 서방과 싸워 이길 비장의 무기처럼 선전해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중국의 과학기술 산업은 외국의 투자와 기술을 자양분으로 성장해왔다.

중국 관영매체 신경보는 지난달 30일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 정부가 화훙(华虹·Hua Hong)반도체, 창신메모리(长鑫存储·CXMT), 양쯔메모리(长江存储·YMTC) 등을 제재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중국에 공장을 둔 한국의 SK하이닉스, 독일의 인피니언(Infineon), 미국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exas Instruments) 같은 외국 기업도 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화훙 반도체는 SMIC에 이은 중국 2위 파운드리 업체다. 창신메모리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D램을 양산하는 회사이고, 양쯔메모리는 플래시 메모리를 전문적으로 생산한다.

신경보 기사는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산업 전반에 제재의 비수를 꽂을 수 있다는 우려를 담고 있다.

이 기사에서는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오랫동안 목이 졸려 왔고 현재 수많은 위험에 직면해 있다”며 “중국 기업들은 미국의 제재 외에도 국제정치 불안,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악재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에너지 가격과 운송비가 계속 치솟으면서 올해 전 세계 반도체 원자재 가격은 20% 상승했다. 반도체 생산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 가격은 최고 5배 증가했다.

중국 반도체 기술 자립 ‘불가능한 목표’

중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소비국이지만, 자체적인 반도체 연구 개발과 제조 능력은 부족한 상태다.

세계적인 전략컨설팅 회사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미 반도체산업협회(SIA)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세계 시장에서 중국의 ‘비메모리 반도체’와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은 1% 미만이었고 반도체 전자설계자동화는 3%, 개별 반도체 등은 7%에 그쳤다.

중국은 세계 집적회로(IC) 웨이퍼 제조 능력에서 16%의 점유율을 기록했지만, 중국 제품은 대부분 중저가 제품으로 기술력이 국제 수준보다 2~3세대 뒤처져 있다.

신경보는 중국 반도체 업계 고위 전문가를 인용해 “중국이 네덜란드 ASML의 고급 리소그래피 장비를 참고해 관련 기술을 개발, 동등한 수준의 장비를 제조하려면 최소 15년이 걸릴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전했다.

지난 5월 노동절 연휴 직후 중국 정부는 중앙정부 기관과 국영기업에서 모든 컴퓨터를 자국산 컴퓨터로 교체하도록 지시했다. 국제사회의 제재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위기감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풀이된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 문제에 정통한 인사들을 인용, “중국이 2년 안에 외국 브랜드의 개인용 컴퓨터를 자국 내 대체품으로 교체하라고 중앙 정부기관과 국가가 지원하는 기업들에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의 IT 전문가 지린은 에포크타임스에 “반도제 제조 공정에는 전자, 광학, 정밀 기계와 소프트웨어 시뮬레이션 및 기타 기술이 포함돼 있다”며 “세계 어느 나라도 반도체를 완전히 폐쇄된 공정 아래 자국 기술만으로 단독 생산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세계 반도체 선두주자로 인정받는 대만 TSMC도 100% 자국기술로 반도체를 생산하지 못한다. TSMC에 10년 뒤진 중국 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중국이 모든 분야에서 반도체 자립 생산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 이 기사는 앨런 완, 위니 한 기자가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