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당국, “개혁개방” 강조한 리커창 선전 시찰 영상 검열

강우찬
2022년 08월 22일 오후 4:08 업데이트: 2022년 08월 22일 오후 4:08

덩샤오핑 동상 앞에서 개혁개방을 강조한 리커창 총리의 발언 영상이 중국 인터넷 검열당국에 의해 검열됐다.

중국 공산당(중공) 지도부 집단휴가 겸 비밀회동인 ‘베이다이허’ 회의를 마친 리커창은 지난 16~17일 중국 경제의 선두주자인 남부 광둥성 선전시를 시찰했다.

17일 리커창은 선전시 롄화산 공원을 찾아 공원 내 덩샤오핑 동상에 헌화한 뒤 가까운 거리에서 구경하던 선전시민들과 대화를 나눴다.

이 소식은 중국 관영 중국중앙(CC)TV만이 보도했으며, 다른 중공 매체들은 보도하지 않았다.

현장을 촬영한 영상을 보면 리커창은 마스크 없이 시민들과 2m 남짓한 거리에서 대화를 나눴다.

시민들은 물론 리커창을 수행하던 지방 간부과 경호요원까지 포함해 100여 명에 가까운 인원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미국에 서버를 둔 반(反)중공 매체 아폴로왕에 따르면 이날 선전시 시내에서는 빨간 조끼를 입은 방역요원들이 마스크 착용을 안내했다.

17일 리커창 총리의 선전시 롄화산 공원 방문을 촬영한 영상. 현재 재생할 수 없다고 표시된다. | 화면 캡처

이는 같은 시기 동북 지역을 시찰한 시진핑 중공 총서기와 묘한 대비를 이뤘다. 일각에서는 리커창 측이 고의로 마스크를 쓰지 않고 시민과 소탈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연출했을 것으로 관측했다.

전날 랴오닝성 진저우를 방문한 시진핑은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이었고 수행원들도 모두 마스크를 썼다.

시진핑은 공산당이 국민당과 맞서 싸워 승리를 거둔 랴오선 전투기념관을 찾은 자리에서 참전 병사들을 만나 6·25전쟁을 뜻하는 항미원조(抗美援朝)를 거론했다. 대만과 갈등이 고조된 상황에서 미국까지 함께 겨냥해 반미감정과 애국주의를 고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6일 랴오닝성 진저우에 있는 랴오선전투기념관을 관람하고 있다. 2022.08.17 | 신화통신=연합뉴스

리커창은 선전시 시찰 현장에서도 여러 차례 발언을 통해 시진핑과의 노선 차이를 드러냈다.

그는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화하든지, 어떤 복잡한 상황이 나타나든지 개혁개방을 반드시 진전시키겠다”며 개혁 개방의 이점과 혜택을 강조한 후 덩샤오핑의 동상을 가리켜 “보라, 동상이 여기 있다”고 말했다.

개혁개방은 중공이 1978년 당시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의 주도 아래 시작한 경제 정책이다. 덩샤오핑 정권은 마오쩌둥이 일으킨 문화대혁명과 대약진 등으로 큰 타격을 입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개혁개방이라는 이름으로 시장경제 체제로의 이행을 시도했다.

반면, 시진핑은 ‘제2의 마오쩌둥’이 되려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 서방 각국과 대립하며 문호를 닫아걸고 빗장까지 채우는 모양새다.

이날(17일) 오후부터 중국판 카톡인 위챗의 단톡방에는 리커창 총리의 이러한 행보를 찍은 영상이 확산됐다.

CCTV 보도 화면이 아니라, 개인이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이 영상에는 ‘인민 군중과 친절하게 교류한다(與人民群眾親切交流)’ 제목이 달렸다.

그러나 같은 장면을 멀리서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린 네티즌의 사진을 보면, 리커창 총리 주변 10~20미터에서는 경호원으로 보이는 흰색 상의에 짧은 머리의 남성들의 수십 명 서성거리고 있었다.

지난 17일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의 선전시 롄화산 공원 방문 현장을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사진. 경호원으로 추측되는 흰색 차림 남성들이 다수 보인다. | 웨이보

경호원들이 주변을 엄밀하게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반인이 리커창 총리를 가까이서 제지 없이 촬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친절하게 교류한다’는 영상은 국무원 선전팀이 유포한 ‘기획물’로 추측됐다.

다른 동영상에서 리 총리는 선전시 옌톈항을 시찰하면서 “황허(黃河)나 창장(長江)의 물이 절대 역류할 수 없고 옌톈항의 물이 끊임없이 흐르는 것처럼 중국은 개혁 개방을 계속 추진하겠다”며 간부들을 향해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

그러나 18일 오후부터 웨이보에서는 ‘리커창, 선전, 창장, 황허’ 같은 단어의 검색이 금지됐다. 리커창 총리의 발언을 담은 영상도 검열됐다. 해당 영상을 클릭하면 “현재 재생할 수 없다”는 안내 메시지가 나온다.

현재 중국 검색엔진 바이두에서 관련 단어를 검색하면, 중국 국무부 산하 퇴역군인사무부에 관영 CCTV 보도 영상을 전재한 영상 한 편이 유일하게 표시된다. 다만, 이 영상 속 리커창의 발언은 대폭 편집됐다.

미국 RFA는 리커창 총리 영상은 17일 오후 늦은 시각 위챗 단톡방에서 급속히 확산됐으나 이후 모두 삭제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