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국유기업 21곳 개혁..장쩌민파 ‘돈줄’ 청산

Liu Xiaozhen
2016년 07월 25일 오전 11:36 업데이트: 2019년 11월 18일 오전 10:30

최근 중국 국유자산관리감독위원회(국자위)에서 국영기업 개혁 명단을 발표해, 국영기업 개혁 시범이 시작됐다. 현 당국의 국영 기업 개혁은 실제로는 장쩌민 집단의 돈줄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라고 한 평론이 밝혔다. 시진핑이 추진하고 있는 국영기업 개혁은 줄곧 장쩌민 이익 집단의 강력한 저격을 받았다.

국영기업 개혁 시범 명단 발표

중국 언론은 7월 14일, 국자위가 국유기업 개혁의 시범 기업 명단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이 명단에는 21개 대형 중앙 기업이 여러 분야의 개혁 시범으로 선택되었다.

그 중, 청퉁그룹(誠通集團), 중국국신(中國國新)이 국유자본으로 운영하는 시범기업으로 선정됐다. 선화그룹(神華集團), 바오강(寶鋼), 우강(武鋼), 중국오광(中國五鑛), 초상국그룹(招商局集團), 중국교통건설그룹(中國交通建設集團), 보리그룹(保利集團) 등 7개 중앙기업이 국유자본투자회사의 시범 기업으로 선정됐다. 중국 에너지 절약(中國節能), 중국건재(中國建材), 국약그룹(國藥集團), 신흥제화그룹(新興際華集團) 등 4개 중앙기업이 이사회 직권 시범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밖에, 중국건재와 중재그룹, 중원그룹과 중국해운, 중국전력투자그룹(中電投集團)과 국가핵전공사(國家核電公司) 등 3개 기업에 중앙기업 합병과 개편 시범을 진행할 것이고, 중량그룹(中糧集團), 중국건축 등 2개 기업은 기업 정보 공개 시범으로 선정됐다.

보도에서는 중앙 기업은 올해 안에 100개로 통합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다.

상하이를 국영기업 개혁 중점으로

경제가 하락하는 압력 하에서 시진핑 진영이 추진하는 국영기업 개혁은 내내 장파 이익 집단의 강력한 저항을 받았다.

리커창은 5월 18일 국무원 상무회의에서 국영기업 개혁에 대해 ‘장사단완(壯士斷腕·독사에게 물린 팔을 잘라 몸을 보전한다)’를 재차 언급했고 아울러 이번 개혁을 공견전(攻堅戰·난제를 해결하다)이라고 했다.

6월 23일, 중앙당교의 기관지 ‘학습시보’는 ‘국영기업 개혁: 아무리 깊은 물이라도 우리는 건너야 한다’ 제하 기사에서 ‘시진핑 시대’라는 책의 내용 일부를 게재했다. 책에서는 “험난한 여울을 건너고”, “단단한 뼈도 갉아먹어야 한다”로 국영기업 개혁이 받는 방해를 형용했다.

이밖에, 책에서는 또 이번 국영기업 개혁에서 상하이를 국영기업 개혁의 중점과 시범으로 삼는다고 밝혔다.

장쩌민이 1990년대 주도한 국영기업 개혁이 남긴 화근은 1999년 장쩌민이 주룽지(朱鎔基)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국영 기업을 주도한 후부터 시작된 것이다. 국영기업 개혁의 방향을 결정한 관건이 되는 한해가 1999년이었다. 인민망에 발표한 ‘중국공산당 대사기. 1999년’ 중에는 1년 내내 주룽지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다.

시사평론가 리린이(李林一)는 “장쩌민은 부정부패의 사심을 품어 국영기업의 개혁을 부정부패의 성연으로 만들었으며 또한 중국 경제에 극히 큰 화근과 함정을 묻어 두어, 후진타오·원자바오, 시진핑·리커창 두 기 지도자를 모두 국유 기업의 곤경에로 밀어 넣었다.”

장쩌민 시대의 국영기업 개혁의 화근

장쩌민은 1999년부터 국유기업 개혁을 주도하기 시작해 주룽지가 이미 정한 정책을 바꾸었다. 그 후의 국유기업은 줄곧 독점기업으로 팽창했으며, 거의 장파 이익 집단의 돈줄로 됐다. 그들은 그 와중에서 국유자산을 삼켰고 미친 듯이 돈을 긁어모았다. ‘호랑이’가 하나하나 낙마함에 따라 그중 놀라운 부패 내막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장몐헝이 국유기업의 돈을 옮기기 시작한 지는 1994년부터였다. 1994년 장몐헝은 수백만 위안의 대출금으로 당시 경제가치 1억 위안(180억 원)이었던 롄허투자를 상하이 경제위원회로부터 사들였으며 이후 중국 전자통신업계에서 자신만의 전신왕국을 시작했다. 롄허투자는 표면적으로는 국유기업이나 실제적으로는 장몐헝의 개인재산이나 다름없다.

장몐헝은 롄허투자를 의지해 상하이를 지키면서, 돈과 권력을 잡았으며, 몇 년 사이에 그의 방대한 전신 왕국을 건립하게 됐고, 2001년에 이르러 롄허투자는 10여 개 기업을 거느린 지주회사가 됐다. 장쩌민은 2001년에 직접 명령을 내려 중국 전신을 ‘북방전신’과 ‘남방전신’으로 나누고, ‘북방전신’ 십 개성의 고정 자산을 장몐헝이 임직하고 있는 차이나네트콤(網通)에 공짜로 넘겼다.

장쩌민 가족은 전신 업계를 장악했고, 장쩌민의 심복 쩡칭훙, 저우융캉은 선후로 석유업을 장악했으며, 장파 관리 리창춘(李長春) 가족, 현 상무위원 류윈산 가족은 각기 문화업계와 금융업계에 손을 댔고, 장파 요원 류즈쥔(劉志軍)은 그 이전에 줄곧 철도계통을 장악하고 있었다.

시사평론가 스스(石實)는 현 당국의 국유기업 개혁은 국유자산 유출을 줄일 것을 요구했지만, 사실은 장쩌민 집단의 ‘돈줄’을 거두어들이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