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광주총영사, “홍콩 인권변호사 ‘광주인권상’ 수상 취소하라”반발…도 넘은 간섭

최창근
2023년 05월 8일 오후 9:44 업데이트: 2024년 01월 6일 오후 7:45

중국 정부가 올해 광주인권상 수상자로 홍콩 변호사 초우항텅(鄒幸彤)이 선정되자 강력 반발했다. 주광주 중국총영사가 시상 기관인 5·18기념재단을 직접 방문하여 항의했다. 이를 두고 지나친 내정 간섭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5월 8일, 장청강(張承剛) 주광주 중국총영사 등 영사관 관계자 2인이 광주광역시 서구 5·18 기념재단 사무실을 항의 방문했다. 원순석 재단 이사장 등을 면담한 이들은 초우항텅의 광주인권상 시상 철회를 요구했다.

앞서 5·18기념재단은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 부의장으로서 1989년 6·4 톈안먼(天安門) 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 집회를 주최한 초우항텅을 광주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홍콩 출신 초우항텅(38·여)은 인권운동가이자 노동운동가로서 홍콩 정부의 부당하고 불공정한 대우에 끊임없이 저항해왔다.

이후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연합회) 부의장을 맡으면서 지난 1989년 중국 공산당이 벌인 톈안먼 진압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홍콩 내 연례 촛불 집회를 이끌어왔다. 사건 당시 결성된 연합회는 매년 6월 4일 희생자 추모와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어왔다. 오랫동안 ‘공산당 일당독재 종식’ 등의 슬로건을 내걸며 촛불 집회와 시위, 거리 행진 등을 펼쳤다. 중국 당국은 ‘승인을 받지 않은 무단 집회를 열었다’며 초우항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초우항텅은 2021년 9월 구속됐다가 이듬해 1월, 15개월형을 선고받아 현재 복역 중이다. 초우항텅 구속 이후 연합회는 해체됐다.

올해 광주인권상 수상자로 홍콩 인권변호사 초우항텅이 선정된 것을 두고 중국 정부가 수상자 선정 취소를 요구했지만 시상 기관인 5·18기념재단(재단)은 ‘수상 철회를 할 이유가 없다’고 거부했다. 장청강 총영사 등은 “홍콩은 엄연한 중국 영토이고 수상자로 선정된 인물은 폭력 시위로 인해 구금된 사람이다.”라며 광주인권상 수상자 선정을 취소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만약 예정대로 시상할 경우 광주광역시와 5·18기념재단에 우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많은 중국인이 불만을 갖게 될 것이다.”라는 경고성 발언도 했다.

원순석 이사장은 “수상 계획을 철회할 수 없다. 민간 영역에서 인권을 평가, 시상하는 상에 대해 국가는 존중해줘야 한다. 해당 국가의 체제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도 아니다. 중국 정부가 인권상 수상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길 바란다.”며 수상자 선정을 취소하는 것을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진태 상임이사도 “광주인권상은 인간의 기본권과 관련해 인권을 옹호하는 활동가에게 주는 상이다. 심사위원회가 수 차례 검증을 거쳐 수상자를 결정한 만큼 철회하거나 변경하기는 어렵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5·18재단은 “초우항텅이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이후 신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홍콩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광주인권상 시상 취소를 요구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2016년 베트남 인권운동가 누엔 단 쿠에(Nguyen Dan Que) 박사가 말레이상 민중운동 시민단체 BERSH(버쉬) 2.0와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자 발표 후 당시 베트남 정부도 비슷한 취지로 재단에 공문을 보내 항의했다. 누옌 단 쿠에 박사는 빈곤층의 건강을 외면하고 공산당원만을 선택적으로 대우하는 베트남 정부의 관행에 맞서 싸워온 점을 인정받아 그해의 광주인권상을 수상했다.

광주인권상은 지난 2000년 종전 ‘5·18시민상’과 ‘윤상원상’을 통합해서 만들어졌다. 인권과 통일, 인류 평화에 공헌한 현존 국내외 인사를 발굴해 재단이 매년 시상하며 올해는 5월 18일 오후 7시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시상식이 열린다.

주광주 중국총영사가 직접 나서 5·18재단 측에 항의한 것을 두고 이례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2007년 개관한 주한국 중국대사관 영사사무소를 모체로 2009년 총영사관으로 승격한 주광주 중국총영사관은 그동안 광주광역시, 지역사회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어왔다. 광주광역시 소재 사립대학인 호남대와 공동으로 2015년 ‘광주광역시 중국과 친해지기 지원센터’를 개소했다. 이후 2017년 광주광역시 차이나센터로 이름을 바꾸었다. 센터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광주광역시에 설치된 중국 업무 지원센터이다. 센터는 중국총영사관, 호남대 공자학원과 더불어 한중 교류 역할에 적극적이다. 지난 1월, 광주광역시는 장청강 총영사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하기도 했다. 시(市)는 “2년 반 동안 총영사로 재직하며 광주와 중국 지방 도시 간 가교 구실을 한 공로를 인정해 명예시민증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12월, 전라남도도 장청강 총영사를 명예도민으로 위촉했다.

2022년 6월, 서울 명동 주한국 중국대사관 앞에서 초우항텅 석방을 요구하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회원과 활동가들.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한편 국제앰네스티는 지난해 초우항텅을  ‘국제앰네스티 편지쓰기 캠페인 2022: WRITE FOR RIGHTS’ 사례자로 선정했다. 캠페인은 63개국에서 열리고 약 450만 통 규모로 세계 최대 규모의 글로벌 캠페인이다. 지난 21년간 캠페인을 통해 쓰인 편지는 인권 옹호 활동을 하다 위험에 처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했고, 감옥에서 석방했고, 법을 바꾸었으며, 인권을 지켜오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2020년부터 시행된 홍콩의 국가보안법 아래 홍콩의 시민 공간은 붕괴하고 있다. 홍콩 당국은 국가보안법을 구실로 시민사회의 활동을 범죄화하는 것을 즉시 멈춰야 한다. 시민은 집회를 통해 천안문 사태의 피해자 추모와 진실 규명을 촉구할 권리가 있다. 중국 당국은 활동가와 시민사회에 대한 억압을 즉시 멈추고, 평화적 집회 시위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평화적으로 인권을 행사한 사람들에 대한 탄압을 멈출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지부는 지난해 6월 3일, 천안문 사태 33주년을 맞아 주한 중국대사관을 방문, 희생자를 추모하고 표현의 자유와 평화로운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촉구하는 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