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고위 관리들의 타락한 성생활은 어디서 왔나

샤샤오창(夏小強)
2018년 01월 10일 오전 9:14 업데이트: 2024년 02월 19일 오후 3:24

최근 BBC는 중국 반부패 운동으로 낙마한 관료 95%가 한 명 이상의 정부(情婦)와 내연 관계를 맺고 있다고 폭로했다. 인민일보는 이미 2014년 관료들의 간통률이 심각한 성(省)을 지도에 표시한 ‘중국 관원 간통 지도(中國官員通奸地圖)’를 게재한 바 있다. 각 성과 시 가운데 후베이(湖北)성의 간통률이 가장 높았으며 그 다음으로는 산시(山西)성, 베이징(北京)시, 광둥(廣東)성이 뒤를 이었다.

미국 타임지 또한 공산당 관료들의 혼외정사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이 보도에 따르면 관료들의 혼외정사는 중국의 큰 골칫거리 중 하나로, 부정부패로 체포된 관료 95%가 혼외정사 사실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60%에 가까운 관료들의 낙마 이유는 모두 정부와 관련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현재 권력과 성(性)이 얽혀 있는 중국의 모습은 ‘처첩성군(妻妾成群)’의 중국 고대 풍속과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근대 사회 가치관의 와해를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 공산당 정치의 타락을 지적할 때 서양 매체는 본질을 지적하지 못한다. 공산당 관료들의 음란과 내연녀 문화의 주요 원인은 공산당이 ‘초심을 잃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에 대한 분석 이전에 먼저 고위 관료들의 음탕한 실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관료들의 ‘정부’ 기록

류춘진(劉春錦) 전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연구실 부주임은 처분을 받은 청국급(廳局級·청장·국장급) 간부들 중 90%가 모두 정부를 거느렸고, 심지어 여러 탐관들이 한 명의 정부를 공유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2014년 3월 22일, 중국 주간지 남방주말(南方周末)은 2008년 발간됐던 <고위관리 ‘정부사건’ 보고>를 발췌해 관련 내용을 발표했다. 해당 내용은 2000년 이래로 재판을 받은 사건과 최근 발생한 41명의 성부급(省部級·장관급) 고위관리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41명 중 36명은 정부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중국 공산당 당 위원회, 정부, 인민대표대회, 정치협상회의, 사법, 군대 등 중앙과 지방의 인사들이 조사를 받았다. 또 여기에는 2008년 중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명 ‘공용정부(共用情婦)’라 불린 리웨이(李薇) 사건도 언급됐다.

2015년 11월 남방도시보(南方都市報)의 보도에 따르면 선전(深圳)시 핑산(坪山)구 컹쯔(坑梓) 계획생육판공실(計劃生育辦公室) 공무원 루모룽(盧某榮)은 정부(情婦)가 간통죄로 고발해, 일주일에 세 번의 잠자리를 갖기로 하는 내용의 각서를 썼다. 내연녀는 루씨의 ‘3가지 죄’를 고발했는데 유부녀와의 간통, 가짜 가족계획 증명서를 처리한 대가로 외지노동자로부터의 뇌물 수수, 고리대금 등이다.

이하는 최근 중국 인터넷에서 떠도는 공산당 관리들의 여자와 관련된 타락상이다.

1. ‘수량상(數量獎)’은 146명의 정부를 거느린 장쑤(江蘇)성 건설 청장 쉬치야오(徐其耀)에게 수여한다. 이 분은 바로 근무 기간 중에 탐오부패를 유일한 목적으로 한 사람이다.

2. ‘자질상’은 충칭시 선전부장 장중하이(張宗海)에게 수여한다. 그는 장기간 5성급 호텔에서 미혼 여대생 17명을 거느렸다.

3. ‘학술상’은 하이난성 방직국장 리칭산(李慶善)에게 수여한다. 그는 성생활 일기를 95권 기록하고 표본을 236부 제작했다.

4. ‘청춘상’은 쓰촨성 러산(樂山)시장 리위수(李玉書)에게 수여한다. 그는 16세에서 18세까지의 정부를 20명 두었다.

5. ‘관리상’은 안후이성 쉔청(宣城)시 부서기 양펑(楊楓)에게 수여한다. 그는 MBA 지식을 활용해 77명의 정부를 지능적이고 효과적으로 관리했다.

6. ‘휘금상(돈펑펑쓰기상, 揮金獎)’ 수상자는 선전시(深市) 사징(沙井)신용사(信用社, 소비자신용조합)의 덩바오쥐(鄧寶駒) 전 주임이다. 그는 ‘회춘'(五奶小靑)을 위해 800일 동안 1840만 위안, 매일 2만3천 위안(376만원)을 썼다.

7. ‘단결상(團結獎)’ 수상자는 푸젠성 저우닝현 서기 린룽페이(林龍飛)이다. 그는 ‘삼광서기(三光(쓰고 남은 것이 없음)書記)’라고도 불리는데 즉, 관직 매진, 재정 자금 탕진, 내연까지 모두 했다는 것이다. 그의 ‘단결’ 사적은 22명의 정부와 함께 파티를 열면서 30만 위안(4천 5백만 원)의 상금을 걸어 정부 중에서 ‘여왕’을 선발하기도 했다.

8. ‘화합상’ 수상자는 하이난성 린가오시 도시관리 대대장 덩산홍(鄧善紅)이다. 그는 6명의 정부와 6명의 아이가 있었으나 자신의 부인은 이 사실을 믿지 않는다.

9. ‘의욕상’ 수상자는 하이난성 통신국 국장 청궈화(曾國華)이다. 그는 5명의 정부들에게 60세가 될 때까지 한 사람과 매주 3번 이상의 성생활을 하겠다고 서약했다.

중국 공산당의 ‘초심’

과연 중국 공산당에게 초심은 무엇인가? 이는 역사에서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역사는 공산당이 사병을 모집할 때의 추태를 기록하고 있다. 1930년 8월 1일, 장시(江西)에서 중국공농홍군(中國工農紅軍)의 선전표어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밥을 먹고 싶나요? 농사를 짓고 세를 내지 않고 싶나요? 지주와 부자의 작은 마누라와 잠을 자고 싶나요? 빨리 홍군에 참가하세요.’

<동방홍(東方紅)>이란 노래에는 ‘38식 소총은 뚜껑이 없고(三八槍,沒蓋蓋), 팔로군에 입대한 사람은 아내가 없는데 위린(榆林)성을 함락시키고 나면 얼씨구나! 한 사람마다 여학생 하나씩 끼고 있네!’라는 가사도 있다.

‘지주 부자의 작은 마누라와 잠을 자는 것’과 ‘한 사람마다 여학생 하나씩을 품에 안는 것’이 바로 공산당의 ‘초심’이다. 그리고 지금은 여러 명의 정부를 거느리는 것으로 발전한 것이다.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은 어디서 비롯됐는가

공산당이 조상과 영수로 받드는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의 음란한 역사가 바로 이 ‘초심’의 근원이다.

마르크스: 1843년 귀족의 딸 예니는 25세의 마르크스와 결혼하면서 혼수로 하녀 린헝을 데려갔다. ‘착취’를 극도로 증오하는 척 했던 마르크스는 자본가 엥겔스가 ‘착취’해온 돈을 마음 편히 썼고, 무상으로 여자 하녀 린헝의 노동력을 점유했을 뿐 아니라 그녀의 몸도 강제로 차지해 1850년 사생아를 낳았다.

당시 예니는 이 때문에 마르크스와 심하게 다투었다. 그리하여 마르크스는 오랜 친구이자 독신자인 엥겔스에게 눈길을 돌렸다. ‘공산주의자 동맹’의 명예를 위해 엥겔스에게 속죄를 요구하고 엥겔스의 이름을 따 사생아의 이름을 지었다. 엥겔스는 노동자의 집에 사생아의 양육을 맡겼다. 벙어리 냉가슴을 앓게 된 엥겔스는 죽음을 앞두고 후두암에 걸려 말을 할 수 없을 때 종이에 이와 같이 썼다. ‘헨리 프레데릭은 마르크스의 아들이다. 투시는 그녀의 아버지를 이상화시켰다.’ 프레데릭은 바로 마르크스의 사생아이고, 투시는 마르크스의 딸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추악한 일이 현재 동독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엥겔스: 평생 결혼하지 않고 가정도 원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맨체스터에서 마리, 마리의 여동생 리지, 그리고 그녀들의 조카딸과 함께 한 방에서 생활하면서 공산주의 초기 단계에 진입했다. 마리의 자매는 아일랜드 사람이었고 모두 엥겔스의 방직공장 여공이었다.

레닌: 구소련 와해 이후 대량의 기밀 문건이 세상에 밝혀지자 비로소 레닌의 사망 원인이 매독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레닌은 청소년 시절부터 음란한 생활 때문에 매독에 걸렸고 25세부터 성병 매독 치료를 받았지만 평생 치유되지 못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옥화칼륨이라는 당시 매독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약물을 대량으로 투약했다. 레닌은 신경성 매독으로 인해 뇌 기능에 심각한 손상을 입어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 레닌이 체내 탄두와 뇌동맥경화로 사망했다는 부검 결과에 대해 27명의 의사 중 단 8명만이 서명해 레닌을 보호하려 했다. 하지만 개인 주치의 2명을 포함한 19명의 의사는 해당 결론에 동의하지 않았고 결국 서명을 거절했다.

스탈린: 23세에 기혼녀인 알릴루예바에게 반해 관계를 맺고 정을 통했다. 훗날 스탈린이 전우 아랴오샤의 여동생 카잘을 아내로 맞이했고, 카잘이 죽고 나자 안나라는 여자와 비밀리에 결혼했다. 그러나 그 관계는 6년밖에 지속되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탈린은 스베틀라나를 세 번째 아내로 맞이했는데 그녀는 그보다 25살 어렸으며 자신의 부인이었던 알릴루예바의 딸이었다. 스탈린은 스베틀라나가 자신의 친딸인 것을 알고 있었다. 훗날 스베틀라나는 자살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음란한 생활은 모두가 알고 있기에 생략하겠다.

‘초심’을 더욱 발전시키다

공산당 관료들의 대규모 정부(情婦) 스캔들은 장쩌민(江澤民)의 집권 시기에 크게 확산됐다.

장쩌민은 집권 10여 년 동안 앞장서서 음란한 생활을 했다. 장쩌민의 정부는 매우 많다. 쑹주잉(宋祖英), 리루이잉(李瑞英), 천즈리(陳至立), 황리만(黃麗滿) 등 내연녀들과의 추문은 일찍이 해외 매스컴을 통해 널리 알려진 바 있다. 그중, 가장 관심을 받은 인물은 쑹주잉인데 쑹주잉은 장쩌민의 후광을 입어 소장 계급까지 달았다.

보시라이(薄熙來)가 다롄(大連)시에 있는 동안 여자와 놀아난 사실은 비밀이 아니지만 이와 관련한 기사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그는 계속 청렴한 스타 이미지로 여성들의 환심을 샀다. 그러나 그가 낙마한 뒤 한 매체는 보시라이의 부패한 생활과 많은 여성들과의 내연 관계를 폭로했다. 스캔들이 일어난 수백 명의 여성들 중 28명은 가수, CCTV 아나운서, 모델을 포함해 인지도가 높은 여성들이었다.

전 정법위원회 서기 저우융캉(周永康)은 ‘백계왕(百鷄王:100명의 암탉을 거느린 왕)’이라고 불렸다. 한 매체는 저우융캉이 장기간 보시라이가 상납한 여성들과 내통했는데 그 중 28명이 확인됐다. 여기에는 가수, 연예인, 여대생이 포함됐다. 저우융캉은 베이징에서만 여섯 곳의 ‘행궁(行宮)’에서 음탕한 생활을 벌였다. 저우융캉은 보시라이와 정부(情婦)를 함께 공유하기도 했다.

중국 공산당은 지난 몇 십 년 간 장쩌민의 ‘발양광대(發揚光大, 더욱 널리 확대 발전)’ 속에 지금까지 끝내 ‘초심을 잃지 않고’ 정부 스캔들과 관련해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공산당 체제가 하루라도 존재하는 이상 관료들은 모두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이며 계속해서 새로운 스캔들이 벌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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